가정생활이 변하고있다.

맞벌이시대에서 남녀 역할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있다.

요리 세탁 청소 육아등 모든 가사가 분담되고있다.

여기에는 "여권의 신장"과 "부권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있다.

맞벌이시대에 바야흐로 생활양식의 "혁명"이 뿌리내리고있다는 얘기다.

대구인근 경산시에 사는 김종찬씨(세일여행사근무.32)와 첼로학원 교사인
그녀의 아내 김현숙씨(30).

결혼 4년째를 맞은 이들 부부의 생활에서 새로운 변화의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아침 7시. 남편 김씨는 밥을 짓고 부인은 각 두돌이 지난 딸 소영양을
돌보며 집안일을 정리한다.

출근길에 소영양을 인근 탁아소에 맡기면 퇴근무렵에 부인 김씨가
데려온다.

저녁에도 비슷한 생활이다.

한사람이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세탁과 청소를 하게된다.

김씨부부는 이 모든 가사노동을 격주로 교대하고있다.

외부약속이나 바깥 일때문에 퇴근이 늦어질 경우 자신이 해야할 일은
고스란히 주말로 넘어간다.

김씨 부부는 "결혼초에는 가사분담으로 인한 의견대립이 잦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맞벌이생활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시간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가사의 분담이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 자체를 "여권의 신장"으로 해석하기에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

가사분담은 일단 맞벌이생활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부엌일"이 더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의 확산은
기존전통적인 부부관계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직장을 가진 며느리가 집안일을 제대로 해낼까 걱정도 많이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이제 자신의 일을 가진 며느리가 부러울 때도
있다"는 김씨의 어머니 씨의 얘기는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이제 수동적인 "양해"수준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권장"
내지는 "지지"를 얻고있다.

이 점은 맞벌이부부 생활양식을 떠받치는 근간이기도 하다.

남편 김씨 역시 "부권의 변화"를 실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고달펐던 생활"에 적응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일을 찾아나선다.

같이 집안일을 하면서 부부간 애정도 더욱 깊어졌다는 얘기에도 은근한
자랑이 배어있다.

맞벌이 부부의 발목을 잡는 것은 다름아닌 시간이다.

이들은 늘 시간이 부족하다.

평일은 말할 것도 없고 휴일은 오히려 더 바쁘다.

허드렛 일이나 밀린 집안일이 없으면 고향이나 친지댁을 방문해야한다.

면도기메이커 질레트사의 김승식차장(32)과 이효숙씨(31.학원강사)는 결혼
6년째를 맞은 신세대부부.

결혼직후 남편 김씨가 경영학석사학위를 따는 동안 2년간을 미국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더치 워크"식 가정생활이 몸에 배어있다.

이들 부부는 요즘 미국생활을 못내 그리워하고있다.

둘만의 단촐한 생활인 탓에 시간이 많고 운동과 레크리에이션을 즐길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귀국후 단 한차례의 국내여행도 못해봤다"고 이씨가 푸념할 때마다 남편
김씨는 "조금만 지나면 여유있는 레저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한다.

여유를 갈구하는 맞벌이 부부들.

그러나 이들은 너무 시간이 없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