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 누구세요?"

다관의 아내는 지금 자기 몸을 누르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낮은 코맹맹이 소리로 물었다.

"나야, 나. 네가 기다리던 사람"

그렇게만 대답하고 가련은 다관의 아내가 느슨하게 걸치고 있는 속옷을
벗겨나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가련의 손길이 그 여자의 몸을 스침에 따라 어느새 그 여자의 뼈와
살이 녹아나 몰랑몰랑해지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는 폭신한 이불 위에 몸이 엎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정작 일을 치르려고 하니 너무 몰랑거려
절정으로 올라가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관의 아내는 밑에 깔린 채 가련의 애를 살살 태우기만 했다.

"딸아이가 홍역을 앓고 있다는데 목욕재계하고 치성을 들여야 하는거
아니에요? 이렇게 나한테 몸을 더럽혀서야 되겠어요"

"아이구, 제발 그런 소리랑은 하지 말고, 몸을 좀 움직여 줘. 엉덩이를
좀 흔들어 달란 말이야"

"이렇게 말이에요? 이렇게? 호호호"

"아이구, 아이구, 나 죽네"

마침내 가련은 일을 치러내었다.

그러자 다관의 아내도 절정으로 오르며 저쪽 방에 있는 남편 다관이
잠에서 깨어나든 말든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 이후로 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몸을 섞는 쾌락에 흠뻑 빠져들었다.

매번 그 일이 상노아이의 치밀한 주선으로 이루어 졌으므로 아직은
남에게 들키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한밤중에 다관의 아내가 몰래 가련의 서재로 들어와 방사를
치르고는 새벽녘에 빠져나가기도 하였다.

그러기를 열흘이나 하다 보니 어느새 딸아이의 홍역이 다 나아 가련이
침구를 다시 안방으로 옮겨놓아야만 하는 날이 다가왔다.

시녀 평아가 가련의 침구들을 이전 그 자리로 옮겨놓다가 깜짝 놀랐다.

베갯잇 틈에서 여자 머리카락이 한줌이나 집혀 나오는 게 아닌가.

주인 마님인 희봉의 머리카락에 대해서는 잘 아는 평아인지라 그
머리카락이 누구의 것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평아는 그 머리카락을 소매 속에 감추고는 가련의 방으로 가 혼자서
멍하니 앉아 있는 가련에게 슬그머니 머리카락 뭉치를 내보였다.

"주인 어른님의 베갯잇에서 이런 것이 한줌이나 나왔는데 이게 도대체
뭐죠?"

가련은 그 머리카락 뭉치를 보는 순간 몸을 날리다시피 하여 평아의
손에서 그것을 빼앗으려 하였다.

평아가 그것을 쉽게 빼앗길 리 없었다.

평아 역시 잽싸게 몸을 피하여 한구석으로 달아났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