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년 새해 벽두부터 중소업계에 낭보가 떨어졌다.

중소기업 정책을 일관성있게 입안하고 정책실무를 집행할 중소기업청을
신설하겠다는 내용이다.

중소기업육성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천명된 셈이다.

이번 낭보에 업계는 일단 환영일색이다.

그렇지만 지난 수십년간 난마처럼 얽혀있는 중소기업 문제가 일도양단
하듯 해결될수 있을지 의아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중소기업을 위해 일을 하고 대변해줄 정부기관이 새로 생긴다는
사실에 중소업계는 자못 흐뭇해 하고 있다.

업계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관된 정책을 집행-관장할 독립된
정부기구의 신설을 건의해왔다.

때문에 중소기업청에 대한 업계의 기대는 정말 남다르다.

새로 생기는 중소기업청이 단지 기존의 공업진흥청을 확대개편하는
수준이라면 엄청나게 실망을 할 것이다.

중소기업육성 문제는 공업표준화나 기술의 정밀도를 지원하는 기관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외국의 중소기업 정책기관들을 봐도 공업진흥 업무보다는 중소기업이
나름대로 경쟁력을 키울수 있는 정책및 자금지원에 치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사실 한 두가지가 아니다.

끊임없는 자금난부터가 큰 과제다.

지난 한햇동안 1만4,000여개 중소기업이 부도를 냈다.

창업 법인보다 부도업체수가 많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부분 선진국에선 금융기관들이 대출해줄 기업을 찾기 위해 안달이지만
유독 우리나라 중소기업만은 돈을 빌릴 곳이 없어 동분서주하다 끝내 부도에
휘말린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는가.

사실 이 문제를 놓고 정부차원에서 근본적인 조사를 통해 관계법을
정립하고 차근차근 시책을 밀고 나간적은 거의 없다.

오죽하면 선거철만 되면 중소기업 지원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거는 상황이
되었을까.

중소기업은 국가 경제의 뿌리다.

결코 시류에 따라 선거용으로 이용이나 되어선 안된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중 중소기업의 비중은 98.6%에 이른다.

업체수 비중에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전혀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실속을 보면 아연실색하게 된다.

부가가치 창출을 비롯 수출비중 출하액 등에서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형편없기 그지 없다.

선진국일수록 부가가치 창출액 비중이 한결같이 전체 기업의 60%선을
넘어선다.

이들 선진국 중소기업 제품들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자동차 한대만 뜯어 보아도 전체 부품의 65% 이상을 중소기업이
생산해 납품한다.

부품 65%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가운데 단1개 기업의 부품인 기어나
브레이크가 고장나더라도 그 자동차는 불량품이 된다.

500여개 납품업체중 1개업체만 부실해도 국산자동차의 품질에 결정적인
타격을 미친다.

단 한업체의 문제가 이처럼 심각한 차원으로 확대될수 있다는 점은
중소기업정책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선진국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전담 정부기관을 만들어
운용중이다.

일본의 경우 중소기업청을 두어 중소기업청 장관이 중소기업 관계법제정을
비롯 중소기업 정책입안 등을 현실에 맞게 집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청이 매년 중소기업백서를 발간해 이를 토대로 새로운
시책을 입안하는 기초로 삼고 있다.

이른바 선거용 자료를 위해 중소기업을 이용하는 차원은 뛰어넘고 있다.

미국에선 연방정부 산하에 중소기업처(SBA)를 두어 중소업체들이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마케팅활동을 지원한다.

대만의 경우는 이보다 한단계 앞선 중소기업처를 두고 법률제정및 자금
지원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도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세계 어느나라에 못지않게 중소기업
정책이 많은 나라이다.

헌법에 중소기업육성을 규정한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뿐이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의 위상은 여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심각한 상황이다.

대기업들의 중소기업분야 침투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정부기관들도
중소기업제품 구매가 법제화되어 있음에도 기피하기 일쑤다.

대기업이 부품이나 물품을 납품받고서도 대금지급을 3개월이상 미루는 것은
다반사다.

이제 이런 문제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해줄 수 있는 곳은
중소기업청 뿐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청에 거는 중소기업계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정부는 중소기업청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선결과제다.

또 이의 실행을 위한 충분한 예산배정도 뒷받침돼야 한다.

아무튼 이번 기회 만큼은 업계의 소망을 저버리지 않는 대책이 나왔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