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수 <신임 문화체육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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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분야가 문화임에도 불구, 현재
문화예술행정은 매우 낙후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부문이 제대로 성장할 수있도록 문화공간을 확충하고 각종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문화인프라구축에 힘쓰겠습니다"
신임 김영수 문화체육부 장관(54)은 국민들이 "삶의 질"의 향상을
피부로 느낄수 있도록 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과거의 행정이 규제위주였다면 오늘날의 행정은 지원이나 서비스
중심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문체부는 특히 문화예술 종교 관광 체육등 국민들의 삶의 질과 바로
연관되는 부서입니다.
따라서 온국민이 문화예술을 올바로 향수하고 예술인들도 대접받을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겠습니다.
김장관은 따라서 재임중 무엇보다도 문화예산의 증액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체부는 규모에 비해 예산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내년도 예산이 올해보다 19.6% 늘어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문화예술부문만을 따로 보면 0.56% 증가한데 불과합니다.
내년에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후년에는 40%이상 증액될수 있도록
지금부터 힘을 쏟겠습니다"
김장관은 또 고속철도의 경주 통과문제에 대해서도 언급, 각계의 의견이
올바로 반영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경주노선이 문체부의 입장이 간과된채 확정된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물론 경주시민들의 입장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천년고도 경주의 문화재가 훼손되지 않으면서 경주시민과 관광객 모두
편리하도록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의견을 수렴해가겠습니다"
그는 또 경복궁 복원과 관련, 국론이 모아져 입안된 만큼 계획대로
차근차근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김장관은 민정수석시절 바쁜 업무때문에 음악회나 전람회장을 찾을
겨를이 없었다면서 문체부장관이 된만큼 풍부한 문화생활을 즐길
생각이라고 얘기했다.
김장관은 42년 인천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서울지검 공안부장,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을 거쳐 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일해왔다.
< 오춘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2일자).
문화예술행정은 매우 낙후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부문이 제대로 성장할 수있도록 문화공간을 확충하고 각종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문화인프라구축에 힘쓰겠습니다"
신임 김영수 문화체육부 장관(54)은 국민들이 "삶의 질"의 향상을
피부로 느낄수 있도록 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과거의 행정이 규제위주였다면 오늘날의 행정은 지원이나 서비스
중심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문체부는 특히 문화예술 종교 관광 체육등 국민들의 삶의 질과 바로
연관되는 부서입니다.
따라서 온국민이 문화예술을 올바로 향수하고 예술인들도 대접받을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겠습니다.
김장관은 따라서 재임중 무엇보다도 문화예산의 증액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체부는 규모에 비해 예산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내년도 예산이 올해보다 19.6% 늘어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문화예술부문만을 따로 보면 0.56% 증가한데 불과합니다.
내년에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후년에는 40%이상 증액될수 있도록
지금부터 힘을 쏟겠습니다"
김장관은 또 고속철도의 경주 통과문제에 대해서도 언급, 각계의 의견이
올바로 반영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경주노선이 문체부의 입장이 간과된채 확정된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물론 경주시민들의 입장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천년고도 경주의 문화재가 훼손되지 않으면서 경주시민과 관광객 모두
편리하도록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의견을 수렴해가겠습니다"
그는 또 경복궁 복원과 관련, 국론이 모아져 입안된 만큼 계획대로
차근차근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김장관은 민정수석시절 바쁜 업무때문에 음악회나 전람회장을 찾을
겨를이 없었다면서 문체부장관이 된만큼 풍부한 문화생활을 즐길
생각이라고 얘기했다.
김장관은 42년 인천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서울지검 공안부장,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을 거쳐 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일해왔다.
< 오춘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