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홍루몽] (279) 제8부 아늑한 밤과 고요한 낮 (16)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보옥과 대옥, 보채 셋이서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보옥의 방 쪽에서 왁자지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은 이야기를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가 누구랑 싸우는 거야?"

    보옥이 대옥과 보채를 쳐다보며 물었다.

    "도련님의 유모가 습인을 못살게 구는 것 같아요.

    또 노망기가 도진 모양이에요"

    "뭐 지금 습인이 아파 누워 있는데, 저 할망구가"

    보옥이 불끈 화가 나서 달려가려 하였다.

    보채가 얼른 보옥의 팔을 붙들었다.

    "유모한테 대어들지 말아요.

    그래도 어릴 적부터 키워준 유모잖아요"

    보옥이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걸음을 조금 느리게 하여
    자기 방으로 가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이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방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자리에
    누워 있는 습인을 향해 바락바락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이년아, 네가 혼자 잘나서 이만큼 된줄 아니. 내가 뒤에서 돌봐준
    덕분이라는걸 너도 잘 알지?

    그런데 내가 왔는데도 버르장머리 없이 드리누워 인사 한마디 없어?
    못된년, 요망한 년"

    습인이 겨우 정신을 차린듯 멍한 표정으로 상체를 반쯤 일으켜 세워
    변명하였다.

    "말씀드렸잖아요.

    몸이 아파 땀을 내고 있는 중이라구요.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오신 줄을 미처 몰랐다구요"

    습인이 보옥이 방으로 들어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더욱 간곡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노파는 보옥을 의식하고는 더 기승을 부렸다.

    "너 버릇없는 거 이번만이 아니야. 살살 꼬리를 쳐서 도련님까지
    속여 먹고.

    그러니 도련님도 네년 말만 듣고 나같이 늙은 것은 무시한단 말이야.

    몇푼 안되는 돈에 팔려온 종년 주제에 도련님을 넘겨다봐?

    너 정 그러면 억지로 어느 하인놈에게 붙여주고 말거야.

    그래도 도련님에게 꼬리를 치나 두고보자"

    이 노파의 말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내가, 내가 뭘 도련님을 속여먹었다고 그래요? 으흐흑"

    드디어 습인이 분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보옥이 급히 습인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부축하여 도로 자리에 눕혀주며
    이 노파에게 말했다.

    "유모, 보다싶 습인이 감기 기운으로 몸이 아파 약을 먹고 땀을 내는
    중이잖아요.

    그러니 제발 그만 들들 볶으세요"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1일자).

    ADVERTISEMENT

    1. 1

      [한경에세이] 결승선에서 깨달은 투자법

      2023년 말, 직장 동료가 들려준 달리기의 즐거움에 매료돼 러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숨이 가쁘고 쉽게 지쳤지만, 새벽과 주말을 활용해 조금씩 거리를 늘려갔다. 꾸준히 달리다 보니 작년에는 하프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의 성취감은 컸다.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노력의 결과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첫 도전이었기에 목표는 그저 완주였다. 동료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준 덕분에 여유 있게 몸을 풀고 수월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초반 워밍업이 끝나자 자신감도 붙었다. 새로 산 경량 러닝화 덕분인지, 대회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몸도 가볍게 느껴졌다. 문득 어쩌면 2시간 안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계획보다 조금은 빨리 달려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페이스를 올려가던 중 17㎞ 지점을 지난 오르막길에서 급격히 체력이 소진됐다. 황급히 에너지 젤을 먹고 이온 음료도 마셔봤지만 한번 떨어진 페이스는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곧 가벼운 조깅 속도마저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어찌어찌 버티면서 결승선까지는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제야 수많은 달리기 선배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초반 스퍼트의 위험성과 꾸준한 페이스 유지의 중요성을.최근 많은 투자자가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를 느끼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다급해지고, 급등장을 보고 있노라면 빠르게 부자가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레버리지를 활용하면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이럴 때일수록 &lsq

    2. 2

      통영의 봄날, 시와 음악과 도다리쑥국… [고두현의 문화살롱]

      얼마나 애틋했으면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을까. 북방 시인 백석은 남쪽 끝 통영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 친구 결혼식에서 한눈에 반한 통영 출신 이화여고생 ‘난(蘭, 본명 박경련)’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짝사랑하는 여인은 거기 없었다. 갈 때마다 길이 엇갈렸다. 낙심한 그는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아 울 듯 울 듯 손방아만 찧었다.당시 그는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을 거쳐 구마산역에 내린 다음 객줏집에서 자고 뱃길로 반나절 더 가서 통영에 도착했다. 그 먼 길에 어렵사리 꺼낸 청혼은 거절당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더 강렬하고 기억도 오래간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이가르니크 효과’ 혹은 ‘미완성 효과’ 때문일까. 백석에게 통영은 못다 한 사랑과 미완의 결핍이 교차하는 안타까운 항구다. 어쩌면 그 덕에 통영의 역사가 더 풍요롭고, 서정과 서사의 폭도 넓어졌는지 모른다.청마문학관엔 빨간 우체통이90년 전 그의 회한을 되짚으며 봄맞이 통영 기행에 나섰다. 옛 이틀 길을 고속버스로 네 시간 만에 닿았다. ‘난’이 살던 집 주소는 명정동 396.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한 그녀의 옛집 건너편엔 오래된 우물 두 개 ‘명정(明井)’이 나란히 있다. 다정한 부부 같다. 맞은편 공원의 시비에는 백석의 시 ‘통영 2’가 새겨져 있다. ‘미역 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구절이 유난히 애처롭다.명정동에서 서피랑 골목을 끼고 강구안으로 가는 항남동 길에도 백석의 애환이 서려 있다. 이곳은 청마 유치환과 김춘수 김상

    3. 3

      [강경주의 테크 인사이드] 중국이 전인대에서 BCI 언급한 이유

      “딸을 한 번이라도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입니다.”‘이즌쉬러블리(Isn’t she lovely)’라는 명곡을 작사·작곡한 스티비 원더는 시각장애인이다. 임신 35주 만에 태어난 조산아였던 그는 신생아 집중치료를 받던 중 간호사의 실수로 인큐베이터에 산소가 과다 유입되는 사고가 발생해 시력을 잃고 만다. 병명은 미숙아 망막병증. 눈이 덜 자란 상태에서 과도한 산소 치료를 받다가 망막이 손상된 경우다.BCI, 산업 패권 좌우한다스티비 원더는 시력을 잃었지만 탁월한 음악성을 발휘하면서 어릴 때부터 음악 천재라는 얘기를 들었다. 마이클 잭슨을 배출한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음악 음반사 모타운 레코즈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영입했을 때 스티비 원더의 나이는 불과 11세. 앞을 볼 수 없던 천재 소년은 모타운 소속으로 음악 활동을 하다가 작곡가인 시리타 라이트를 만나 첫눈에 반했고, 20세가 되자마자 결혼식을 올렸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75년 딸 아이샤 모리스를 품에 안았지만 스티비 원더는 딸을 볼 수 없었다.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마음을 담아 곡을 썼고 딸의 얼굴을 수없이 머릿속에 그렸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이즌쉬러블리는 이렇게 탄생했다.과거엔 스티비 원더의 꿈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생각만으로 컴퓨터, 로봇을 다루고 시각장애인이 앞을 보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시대가 머지 않았기 때문이다. BCI는 뇌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해 외부 장치를 제어하는 ‘꿈의 기술’로 불린다. 미국 특허상표청(USPTO)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BCI 기업 뉴럴링크는 ‘블라인트사이트’,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