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씨 공판 방청권 따기 .. 100여명 줄서서 밤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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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노태우 전대통령의 첫 공판을 하루앞둔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정문앞에는 18일 오전9시에 배포하는 방청권을 얻기위해
시민 1백여명이 몰려들어 줄을 서 밤을 새는등 이사건에 쏠린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
특히 17일 오전10시께부터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시민들은 오후
7시를 기해 80명을 넘겼다.
법원측이 노씨 첫 공판의 일반인 방청석을 80석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이같은 사실을 뒤늦게 안 일부 시민들은 저녁식사를 마친 뒤 방청권
대열에 합류하려다 이미 80명을 넘어선 것을 확인하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학생과 외신기자,시골농부와 개인사업을 한다는 이들은 특히 18일 오전
방청권을 배포할 때까지 법원 정문 앞에서 밤을 새기위해 두터운 외투와
모자 털장갑등을 착용하고 역사의 현장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지켜
보겠다는 의지로 추위를 견디기도.
줄 맨 앞에 선 일본 NHK한국지사의 한 직원은 "법원측이 외신기자들
에게는 방청권을 제한해 하는 수 없이 취재기자를 일반인 방청석에라도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오전 10시부터 나왔다"며 법원측에 불만을 표시하
기도.
두번째에 선 성균관대 농경제학과 문모군(24)은 "역사적인 현장을
보기 위해서"라고 만 말했으나 자못 비장한 표정.
세번째로 나온 박일호씨(60.서울 영등포구 구로동)는 "역사적인 재판을
구경하기 위해 오후 3시에 왔다"며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이렇게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수 있느냐"며 노씨 첫 공판 모습에 크게 기대하는 모습.
또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한 하남식씨(25)는 "부모님들이
뼈빠지게 고생해서 세금을 냈는데 노씨가 그 세금 뿐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호의호식했다는데 분노를 느낀다"며 "역사의 현장도
구경할 겸 구체적인 형사재판 진행에 대한 공부도 할 겸해서 왔다"고
설명.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8일자).
서울지법 정문앞에는 18일 오전9시에 배포하는 방청권을 얻기위해
시민 1백여명이 몰려들어 줄을 서 밤을 새는등 이사건에 쏠린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
특히 17일 오전10시께부터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시민들은 오후
7시를 기해 80명을 넘겼다.
법원측이 노씨 첫 공판의 일반인 방청석을 80석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이같은 사실을 뒤늦게 안 일부 시민들은 저녁식사를 마친 뒤 방청권
대열에 합류하려다 이미 80명을 넘어선 것을 확인하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학생과 외신기자,시골농부와 개인사업을 한다는 이들은 특히 18일 오전
방청권을 배포할 때까지 법원 정문 앞에서 밤을 새기위해 두터운 외투와
모자 털장갑등을 착용하고 역사의 현장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지켜
보겠다는 의지로 추위를 견디기도.
줄 맨 앞에 선 일본 NHK한국지사의 한 직원은 "법원측이 외신기자들
에게는 방청권을 제한해 하는 수 없이 취재기자를 일반인 방청석에라도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오전 10시부터 나왔다"며 법원측에 불만을 표시하
기도.
두번째에 선 성균관대 농경제학과 문모군(24)은 "역사적인 현장을
보기 위해서"라고 만 말했으나 자못 비장한 표정.
세번째로 나온 박일호씨(60.서울 영등포구 구로동)는 "역사적인 재판을
구경하기 위해 오후 3시에 왔다"며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이렇게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수 있느냐"며 노씨 첫 공판 모습에 크게 기대하는 모습.
또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한 하남식씨(25)는 "부모님들이
뼈빠지게 고생해서 세금을 냈는데 노씨가 그 세금 뿐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호의호식했다는데 분노를 느낀다"며 "역사의 현장도
구경할 겸 구체적인 형사재판 진행에 대한 공부도 할 겸해서 왔다"고
설명.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