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의 경영방식.풍토는 요즘들어 부쩍 빠른 속도로 바뀌는 양상이다.

그 가운데 최고경영자들의 대우에 관한 것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다름 아니라 특정기업에서 "용도 폐기"돼 물러난 최고경영자들은
다른 회사에서도 외면당하기 일쑤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있다가 "불명예
스럽게" 물러나더라도 종래 갖고 있던 다른 회사의 "사외이사"자리는 유지할
수 있었다.

비록 한 쪽에서는 용도 폐기됐을 지라도 또 다른 쪽에서는 쓸모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이런 논리가 점점 더 통하지 않게 돼가는
추세다.

지난달 22일 급작스럽게 크라이슬러의 사외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조셉
안토니니 전K마트사장도 이같은 사례에 속한다.

안토니니 전사장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호텔개발업체인 트라신다의 소유주
커크 커코리안이 크라이슬러 이사회에 제롬 요크 트라신다부회장의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지 이틀만에 퇴진했다.

트라신다는 크라이슬러 주식 10%를 갖고 있었으며 커코리안은 트라신다에서
퇴임하는 요크 부회장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크라이슬러에 압력을
가했다.

안토니니는 지난 3월 K마트 최고경영자직에서 경영부실의 책임을 지고
퇴임한지 8개월만에 이같은 일을 당한 것이다.

5년전만해도 방금 전에 최고경영자 자리를 내준 사람에게 2중의 치욕을
안겨주는 이러한 풍토에 찬성하는 회사는 몇몇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당수의 미기업들이 여기에 동조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뉴욕에 위치한 인력조달 업체인 콘.페리 인터내셔널이 1,059개 업체를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업체들의 거의 3분의 1이 "직책이
변경된" 최고경영자들에게 사외이사에서 퇴임할 것을 권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업체인 스펜서스튜어트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28%의 회사들이
밀려난 최고경영자들에게 비슷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제 이같은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게 미국 기업문화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으며 앞으로 미기업 최고경영자들은 한꺼번에 두가지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맡은 일에 신경을 더욱 써야만 할 것 같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