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비 원춘이 대부인과 왕부인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형부인과 이환, 영춘, 탐춘, 석춘들도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반가움이 넘쳐야 할 분위기가 눈물바다가 되어 무거워지자 원춘이
슬픔을 누르고 웃음을 지으려고 애썼다.

"지난날 제가 식구들을 만날 수 없는 궁궐로 떠날 때도 슬피 우시더니만
이제 식구들을 만나보러 온 오늘도 우시는군요.

오늘은 울고만 있을게 아니라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밤새껏
나누어야 하는 날이잖아요.

새벽녘에 궁궐로 돌아가야 할 텐데 내가 다시 떠나면 언제 또 집으로
올지 모르잖아요.

자, 눈물들을 거두고 웃으시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원춘이 또 울음을 터뜨렸다.

원춘에게 큰어머니가 되는 형부인이 원춘에게로 다가가 간곡한 말로
위로하자 원춘이 겨우 진정이 되어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녕국부와 영국부의 집사들과 하인들이 대청 밖에서 원춘에게
문안인사를 드렸다.

그들의 문안인사를 받고 난 원춘이 주위를 둘러보며 어머니인 왕부인
에게 물었다.

"이모님과 보채, 대옥 들은 왜 안보이나요?"

이모는 곧 보채의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은 외가 친척인데다가 관직도 없어 감히 나와 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속히 오도록 하세요"

원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태감들이 보채의 어머니 설부인과
보채, 대옥들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설부인이 국례로 후비 원춘에게 문안을 드리려 하자 원춘이 그러지
못하도록 만류하며 오히려 설부인댁의 안부를 물었다.

원춘이 보채와 대옥을 보니 둘 다 어느새 아름답고 훤칠한 아가씨들로
자라 있었다.

그런데 둘의 아름다움에는 어쩐지 차이가 있는 듯이 보였다.

보채는 부드러운 옥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면 대옥은 요염한
한 떨기 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에서 보옥이 혼란을 겪을 것같은 예감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자 원춘은 보옥이 무척 보고싶어졌다.

남자들은 후비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관례를 깨고 원춘이
동생 보옥을 속히 데리고 오도록 하였다.

바깥에서 어정거리던 보옥이 안으로 들어가 후비에게 절을 올리자,
"아유, 우리 보옥이 많이 컸구나" 하며 원춘이 두 팔을 벌려 보옥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렇게 끌어안고 보니 정말 보옥은 어릴적 보옥이 아니라 하나의
사내로 골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원춘의 두 눈에서 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보옥도 코끝이 찡해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