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 대한 최종수자결과를 노씨
기소시점인 12월5일 이전에 발표키로하고 사실상 마무리작업에 들어가자
노씨에게 돈을 건네준 기업인에 대한 처리가 최대관심사가 되고 있다.

검찰은 노씨 구속영장에 뇌물공여자로 기재된 30명의 대기업 총수가운데
뇌물공여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25명에 대해서는 현재 도피중인 배종렬
전한양회장 1명만 구속하고 나머지 24명은 전원 불구속 기소키로 내부방침
을 정한 것같다.

또 선경그룹 최종현회장, 극동그룹 김용산회장, 해태그룹박건배회장,
코오롱그룹 이동찬회장, 태평양그룹 서성환회장등 5명은 뇌물공여시점이
모두 90년 11월이후인 만큼 공소시효 만료에 따라 불기소 처분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주변에서는 검찰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우선 검찰이 "원칙"과 "현실"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현실"쪽의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이다.

검찰이 기업인 사법처리를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지적은 노씨 구속
이후 줄기차게 제기돼 왔었다.

검찰은 지난 93년 대대적인 사정수사 이후 뇌물제공액수가 <>5억원이상
구속 <>1억원~5억원 불구속 <>1억원미만 약식기소라는 내부기준을 뇌물
수수사건때마다 적용해 왔다.

만약 이 원칙을 그대로 들이댈 경우 노씨에게 뇌물을 준 대기업 총수가
전원 구속기소되는 엄청난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공소시효에 따라 뇌물공여혐의가 인정되는 24명의 대기업 총수의
뇌물인정액수가 모두 5억원을 크게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경제에 상상을 초월한 악영향을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고
이는 검찰로서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 집권 민자당측에서는 사건 초기부터 검찰에 "경제의 파급
효과를 감안 기업인 처벌은 신중해야한다"는 주문을 넣어왔고 재계에서도
"연일 검찰에 소환되는 기업총수들의 모습이 외신에 보도돼 우리나라
기업인의 이미지가 말이 아닐정도로 실추되고 있다"는 하소연을 해왔었다.

따라서 검찰은 대기업총수가 구속될 경우 해당그룹이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된다는 현실적 요인을 중시, 사법처리 강도를
이처럼 대폭 완화했다는 관측이다.

이와함께 영장에 이름이 적시된 대우그룹 김우중회장과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까지도 불구속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이들을 구속할 경우 야기될
형평성 문제등을 크게 고려한 조치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돈 준 기업인들을 불구속처리한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법적처벌문제가 매듭지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불구속상태이긴 하지만 검찰이전원 정식재판에 회부키로 한 만큼
"법원의 심판"이라는 큰 고비가 아직도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법원이 뇌물을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뇌물을 준 사람
에게도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같은 법원의 기류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달 선고된 이형구
전노동부장관 수뢰사건 1심 재판.당시 검찰은 이 사건에 연루된 12명의
기업관계자들이 이전장관에게 1억원미만의 뇌물을 건넨 사실을 감안,
전원 벌금 1백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직권으로 이들을 정식 재판에 부쳤으며 검찰은 이때도
당초 방침대로 벌금 1백만원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구형량을 크게 웃도는 1천만~2천만원의
벌금형과 비록 집행유예이긴 하지만 징역형까지 선고했다.

따라서 검찰은 어떻게 보면 "전원 불구속"으로 기업인 처리에대한 부담을
벗는 대신 "기업인 처벌"의 바톤을 법원으로 넘겨버리는 방편을 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