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골도바시에서 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나지막한 산허리에
자하라궁전의 유적이 있다.

이슬람.스페인의 영광을 구축하고 부귀영화를 맘껏 누린 압둘라만3세가
꽃과 같이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애첩의 이름을 따서 그녀를 위하여 이
궁전을 지었고 또 여기서 사망했다.

폐허로 변해 관광객의 발걸음조차 멀어져 있는 이 궁전은 건축하는데만
25년이 걸렸고 완성후 2만5천명의 신하와 잡부들을 수용하였으며 하루의
육류소비량도 7t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아프리카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등지에서 운반된 각양각색의 대리석기둥들
은 그 수에 있어서도 근 5천개나 되는 금박으로 수놓인희귀석과 다이아몬드
진주등 보석을 박아 넣은 정교한 리리프와 아라베스크로 장식되었다.

안달샤의 햇빛이 눈부신 넓은 평야와 과달끼빌강을 굽어보는 홀에서는
향료섞인 옥색샘물이 끊임없이 솟구쳤고 밤에는 정원의 요초숲사이로
환상적인 달빛이 스며드는 그야말로 꿈의 궁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영화는 이미 간데없고 인적이 드문 이 폐허는 옛모습만
상기시킬뿐 내리쪼이는 햇빛아래 쓸쓸히 웅크리고 있다.

다만 부겐베리야와 협죽도만이 만발하게 피어 길손을 깊은 감회에 젖게 할
뿐이다.

이 궁전을 건립한 압둘라만3세는 스스로 수기하고 있다.

"내가 통치한 50년동안 이 나라는 평화와 승리로 충만했다. 신하로부터는
사랑을 받았고 적들은 두려워했으며 동맹자나 세상에 알려진 통치자들로부터
는 존경을 받았다. 부와 명예, 권력과 쾌락을 모두 소유해 봤다. 그러나
정작 행복을 맛본 나날은 겨우 14일밖에 안되었다. 오오 식자들이여. 이
세상에서 가장 혜택받은 자가 누릴수 있는 부귀영화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싱각해 보라"

전임통치자의 비자금스캔달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지금
우리들의 가슴에 깊이 와닿는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