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비리사건으로 온나라안이 벌집을 쑤셔 놓은듯
떠들썩하다.

국민들은 전직대통령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한 비리로 구속된데 대해 분노하는 단계를 넘어 허탈감에 빠져있다.

오랫동안 사회병리를 연구해온 의학박사 백상창씨(62)는 한국병이
만연돼있는 정치문화와 개인의 성격이 맞물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한다.

그는 신경정신과 원장으로 한국정신분석정치학회장 한국사회병리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백회장은 매주 토요일 시민을 위한 건강강좌를 열고 있는 등 건강한
사회를 구현하는데 심혈을 쏟고있다.

민족의 한, 한국정치와 사회병리, 영혼에 이르는 결혼과 성,
프로이드심리학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사회병리연구총서를 출간했다.

서울 화곡동에 있는 연구소에서 백회장을 만나 한국병의 진단과
처방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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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병리 연구에 매달리게된 동기가 있을텐데요.

<> 백회장 = 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일하면서 여러가지 가정문제들을
다루게 됐고 결국 우리사회가 안고있는 문제점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껴 사회병리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사회병리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지요.

-정신분석정치학회는 언제 창립됐는지요.

<> 백회장 = 거시적인 정치학과 미시적인 정신분석학을 접목시켜
정치행태와 유권자들의 집단심리 및 민주화과정에서 파생하는 여러가지
현상들을 분석하고자 지난 92년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출범시켰습니다.

-온나라안을 시끌시끌하게 만든 전직 대통령의 비리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백회장 =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와 개인의 성격이 맞물려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서양과 정치문화가 다릅니다.

서양이 수평적 정치문화라면 우리나라는 수직적 정치문화라고 할수
있습니다.

서양은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속에서자신과의 싸움으로 일관돼
왔습니다.

정치의 민주주의와 경제의 자본주의가 지탱해오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왕권중심사상과 군사문화로 이어져 왔습니다.

조선말기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정치세력이 왕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처럼 모여든다"고 정치의 소용돌이론을 말한지가 1백년인데
민주주의라는 옷을 입고도 의식은 달라진게 없습니다.

-정치문화의 특질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습니까.

<> 백회장 = 우리나라는 "먹는 문화"가 강합니다.

서양과 달리 먹는다는 의미가 다양하지요.

밥을 먹는것 이외에도 뇌물도 나이도 참피언도 먹는다고 표현합니다.

먹는데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경향이 있지요.

우리 어머니들은 욕구를 억압당한 한을 갖고 있어요.

젖을 먹이다가도 따귀를 때리는 일이 있습니다.

달콤할때 고통을, 사랑과 증오를 함께 경험하게 되지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오히려 어머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겁니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모.유아유착현상이지요.

먹는 문화의 뿌리가 깊습니다.

-먹는 문화와 이번 비리사건이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인것 같습니다.

<> 백회장 = 정치권의 결재권자는 먹고싶은 충동을, 아랫사람들은
먹이고 싶은 충동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뿌리깊은 샤머니즘도 도외시할수 없습니다.

귀신앞에 온갖 제물을 올려 놓고 비는 토속적인 심리가 가세된 것이지요.

현대의 귀신은 바로 절대권력, 통치자입니다.

권력자에게 제물, 즉 큰 돈을 바치고 빌어서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우리의 전통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이번 비리사건이 노태우씨 개인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는데요.

<> 백회장 = 노태우씨의 성격은 수동적 공격형으로 분류할수 있습니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는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면서 마음속에 어둡고
깊은 욕심을 갖는 이중성격으로 나타납니다.

"잘 보이려는 자기"와 "욕구를 가진 자기"가 공존하는 사람은 화를
정당하게 풀지 못하고 음성적, 간접적으로 풉니다.

다시말해 남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필요한
행동을 안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요.

약속시간을 어기거나 말을 걸지않는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성격형성이 성장과정과 관련이 있나요.

<> 백회장 = 7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삼촌집에서 생활한 유년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년기의 어린아이는 아버지와 대결하다가 반항하고 결국은 항복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다음으로 아버지와 같이 되겠다며 동일시하게 됩니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전통적 가치와 관습을 받아들이면서 양심이란게
형성되지요.

이러한 성장과정이 원만치 못했던것 같습니다.

또 눈치를 보며 자라게돼항상 자기욕구를 억압하고 남에게 잘보이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됐구요.

육사동기생보다 진급이 늦은 열등감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었을 겁니다.

-지도자의 비리사건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인 영향이 있을텐데요.

<> 백회장 = 집단 우울에 집단 히스테리 증세를 유발합니다.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지고 평생 땀흘려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절대 경계해야 합니다.

자칫하다 허탈감과 무력감에 빠져 무감각해질수 있으니까요.

이런 큰 사건은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합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제자리를 찾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요.

<> 백회장 = 정치란 민중과 엘리트가 합작해서 만들어가는 겁니다.

민중을 바른 길로 이끌어갈 매스컴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지요.

매스컴이 창조적 언론 그룹으로서 우리 정치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줄
압니다.

-일련의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의식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 백회장 = 우리 정치가들이 착각에 빠져 있는것 같습니다.

유권자들은 정치가들을 믿고 지지한것이 아니고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심정이 많았을 겁니다.

가장 최근의 선거에서도 특정정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고 기존 정치에
대한 반발과 한의 심리를 표출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정치가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유권자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바람직한 지도자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백회장 = 우선 애국적이어야 합니다.

당연한 소리같지만 민족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또 고뇌와 시련을 통해 자신이 증명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살아온 과거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이밖에 민족의 본질을 알고 통찰력을 갖고있는 사람, 국제정세와 역사의
흐름을 읽을수 있는 사람, 상대방을 존중하고 타협할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사람, 육체적 유혹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사람,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지도자의 자격이있다고 봅니다.

-정신분석학에 기초한 통일관은 어떤 것인지요.

<> 백회장 = 칼 융의 이론중 "미친사람 안에도 건강한 부분이 있다.

그 건강한 부분을 찾아 그것을 중심으로 미친부분을 흡수 통합해야
한다"는 내용이있습니다.

바로 통일의 원리입니다.

남북한을 비교해 볼때 남한이 더 건강합니다.

따라서 남한이 주체가 되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것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순리이지요.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정신분석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 백회장 = 김일성은 큰 인물과 살아남기의 두가지 컴플렉스를
갖고있어 자기도취와 과대망상증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정일은 감정적으로 조울증 환자입니다.

그리고 우울할 때가 즐거울 때보다 훨씬 많고 우울증을 술, 섹스,
영화 등으로 풀고 있으니 그 정신이 건강해질수가 없어요.

또 아버지 김일성에 대한 증오감이 뿌리깊습니다.

-통일을 위한 준비도 필요할텐데요.

<> 백회장 = 우선 정부차원에서 북한 연구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북한의 정치권력과 인민의식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원만한 통일을
성취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의 사회병리 즉 한국병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습니까.

<> 백회장 = 물질중독증이 만연돼 있습니다.

너나할것 없이 돈만 벌으면 성공이고 돈만 있으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돈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다음으로 모두가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의 이익과 권리만 추구하고 상대방은 도외시합니다.

또 자기분수를 잊어버리고 실상을 모른채 남을 모략하고 욕합니다.

-큰 인물 컴플렉스와 여러가지 사회문제의 연관성에 대한 분석도
있던데요.

<> 백회장 = 우리 가정에서는 자식들한테 큰 인물이 될것을 강요하다시피
하지요.

소질 능력 분수에 관계없이 지나친 기대를 가져 큰 인물 강박심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일류대병에 여러가지 청소년문제가 제기되는게 현실입니다.

또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는 지나친 경쟁심리에 동료를 깎아 내리고
모략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결국 정치의 미숙한 수준이 이런 문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한의 심리를 깊이 연구하셨지요.

<> 백회장 = 우리민족은 원래 한이 많습니다.

그래서 근대화이후 한풀이의 역사를 거듭해왔습니다.

5.16이후는 가난의 한풀이에 전력했고 80년대는 짓밟힘의 한풀이가
주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부작용이 생겨 많은 사회문제를 안게된 것이지요.

이는 사회의 기초를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처방책은 무엇입니까.

<> 백회장 = 이제 한풀이의 역사에서 벗어나 한의 승화로 가야합니다.

가정 이웃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한을 승화시킬 수 있는
성숙된 민족성이 필요할 때지요.

-허탈감에 빠진 국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을텐데요.

<> 백회장 = 우리는 고통을 통하여 기쁨과 영광의 길로 나갑니다.

사회적 시련이야말로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행동에 따라 앞으로 좌절의 늪에 빠질수도 있고 영광의 길로
나갈 수도 있지요.

전 국민이 정신을 차리고 정치와 정치인을 감시할 때입니다.

< 대담 심상민 유통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