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상을 주어야겠군"

상노아이들이 대부인에게 재치있게 보고함으로써 사실 보옥은 마음껏
시재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가정은 상노아이들의 보고와는 달리 보옥의 시재를 칭찬해주기는 커녕
말끝마다 꼬투리를 잡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속으로는 감탄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보옥은 무엇으로 상노아이들에게 상을 내릴까 궁리하다가 말했다.

"한 사람당 엽전 한 줌씩 주지"

그러나 상노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엽전 한 줌보다 도련님 몸에 차고 있는 패물들을 하나씩 떼어주세요"

보옥이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상노아이들이 달려들어 염낭과 부채,
주머니들을 떼어갔다.

물론 통령보옥같이 아주 진귀한 것들이나 값비싼 것들은 손을 대지
않았지만 자기들이 가져도 될만한 것들은 모조리 가져가버렸다.

"자, 그럼 이제 도련님을 대부인께로 모시자"

상노아이들이 보옥을 들춰메다시피 해서 대부인이 있는 문 앞까지
데려갔다.

대부인은 보옥이 들어와 명랑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자, 상노아이들이
보고한 대로 아버지 가정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옥이 그렇게 시달림을
받지 않은 것을 알고 적이 안심을 하였다.

그런데 대부인이 보니 보옥의 몸에 찬 패물들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아니, 얘야, 몸에 차고 있던 염낭이며 부채며 주머니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할머님 아시잖아요.

상노아이들이 극성맞다는 것을요.

이번에도 내가 후비 별채 이름 짓기에서 글재주를 발휘한 것은 자기들의
덕분이라면서 상을 내리라고 야단을 부리잖아요.

그래서 몸에 지니고 있던 것들을 그들에게 주었지요"

차를 들고 와 옆에서 듣고 있던 시녀 습인이 고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도련님이 그 아이들에게 주기는요.

그 버릇없는 아이들이 도련님 것을 막 가져갔겠죠"

보옥이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니야. 내가 주었단 말이야"

그때였다.

대옥의 카랑진 목소리가 보옥의 심장을 찌르는 듯했다.

"내가 드린 염낭도 그 아이들에게 주고 말았군요.

앞으로는 나에게서 선물을 받을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아요"

대옥이 뾰로통해진 얼굴로 보옥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홱 몸을 돌려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보옥이 변명을 하려고 엉거주춤 대옥의 방으로 따라들어가니 대옥이
바느질 상 위에 놓여있던 가위를 손에 치켜들었다.

순간, 보옥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습인아, 도련님에게 따뜻한 차를 갖다드려라"

대부인의 지시를 받고 차를 가져온 습인이 가까이서 보니 보옥의 몸에
찬 패물들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