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희 < 대외경제정책 연구원장 >


요즘 국내에서는 비자금비리 등으로 몹시 어수선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낭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대부분이 경제에 관한 소식이고 또한 외교적 승전보도 있다.

금년말로 추계되는 우리의 GDP규모가 4천4백90억달러(DRI 예측)로 이는
전세계에서 11등의 수준이고 수출이 드디어 1천억달러를 넘어섬으로써 세계
12대 수출국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반도체.철강.자동차.조선 등의 주종 산업들이 꾸준히 성장세를 보여 이들
모두가 수년안에 전세계에서 5대에 들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에는 세계 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과거 10년동안 한번도 우승자리를 뺏기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많이 올리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가 유엔총회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어 안보리이사국
(비상임)으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주요 현안을 다루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이 되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다른 14개 회원국들과 머리를 맞대고 세계의 살림살이를
직접 챙겨나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적 대우를 제대로 못받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이사국에 선출된 것은 이제 국제사회가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크게
인정해주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경제력이 커지고 안보리에서의 역할이 중요해짐에 따라 우선적으로 우리
에게 닥칠 일들이 크게 네가지가 있다.

첫째는 세계 경영국의 하나로서 우리의 "경영관"을 확립하는 일이다.

다양한 국제문제를 다루어감에 있어 우리가 추구하는 일관된 가치체계가
있어야 한다.

물론 자유.평화.공정.균형의 보편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이를 달성키 위한
우리 나름대로의 구체적 실행노선도 잘 정립해 놓아야만 한다.

이러한 가치관과 실행노선을 우리 스스로가 모범적으로 지켜 나가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또 하나의 당면 과제로 우리는 지역연구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우리나라도 전문적인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보스니아 사태에서부터 르완다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핵심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구체적 지역연구는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므로 민간쪽 보다는
정부부문에서 확대시켜 나가야 될 것이다.

민간 기업들은 이윤을 목적으로 지역연구에 임하기 때문에 실제로 시장성이
없는 곳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리는 이제 명실공히 상위 중진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한국대표가 발언을 할때 실질적으로 대다수 중진국들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에는 우리의 대외접촉이 선진국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의 뚜렷한 명분과 가치관, 그리고 각 지역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중간자적 발언을 자주 해야만 할
입장에 서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앞으로 대개도국 외교도 더욱 심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당면 과제는 대국민 대외문제 인식의 제고
이다.

외국인들의 평가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국제문제에 관한 관심및 이해도는
경제력 수준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외국어 구사능력도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뒤지고 있고, 해외 현지인들을
대하는 매너 등에서도 우리는 세련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들의 무관심 때문인지 국내 주요 일간 신문에서 국제문제에 할애하고
있는 면수도 세계 유수 일간지에 비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에 정부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각급학교에
국제감각을 제고시키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한다.

이것뿐만이 아니고 국제상식이 우리 생활 모든 부문에서 필수적이라는
분위기 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살기도 바쁜데 남의 일에 웬 참견이냐"라는 생각에 얽매여 있는 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 제고와 역할 강화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막중한 국가적 과제는 이 분야에 특별한 관심과 사명감을 가진
선두 그룹의 형성없이는 힘들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학계에는 94년초에 대외 경제전문가 "풀"이 형성되어 현재
약3백명의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KIEP연구원을 사무국으로 하여 유엔관련 업무는 물론 WTO OECD APEC EU
NAFTA등 국제기구에 관한 연구와 또한 환경 경쟁정책, 금융 각종 서비스
분야, 에너지 해양 지재권 과학기술등 전문과제별 연구및 우리나라와 주요
선진국간의 쌍무간 현안에 대한 대책마련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이 됨으로써 높아진 우리의 위상에 걸맞는 연구와
정책개발을 위해 더 많은 전문가를 발굴해야 하며 또 육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