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전대통령 비자금문제를 계기로 금융실명제가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얼핏보면 이사건은 몇사람의 국회의원에 의해 폭로돼 천하에 드러난 듯이
생각되지만 사실 그 근저에 금융실명제가 있었다고 할수 있다.

지난 93년8월 전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던 금융실명제가 우리 경제 사회에
던진 충격파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실명제란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한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간단한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경제뿐만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각 방면에 미치는 영향은
시행 2년을 조금 넘어서는 현 시점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소규모 거래에 국한된 금융거래를 주로 하던 일반시민이야 금융
거래시 주민등록증을 지참한다는 다소간의 번거로움만이 있었지만 소위
"지하경제"로 통칭되는 부패정치인 관료등은 금융실명제로 인해 긴장감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금융실명제는 이처럼 잘못된 금융거래질서를 바로 잡아 정의로운 경제질서
를 실현하고,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확립해 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투명
하고 건강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사실 금융실명제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5공초기 장영자사건을 계기로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법률"의 공포로써
본격적인 추진단계에 접어들었던 금융실명제는 문민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재산공개를 꺼리는 기득권층의 반발과 이에 편승한 일부 관료들의 추진력
결여로 번번히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문민정부는 93년 8월12일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기존의 법률을
대체하는 형식을 통해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시행함으로써 반대세력의
반발을 사전에 차단시켰다.

금융실명제의 핵심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모든 금융기관과의 거래에 있어서 실명사용의무를 부과한다는 것, 금융정보
의 비밀보장 강화, 그리고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실시 등이다.

이중 실명거래의무와 금융정보의 비밀보장 강화는 서로 상충하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 두 항목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다.

모든 거래는 실명으로 하되 개인의 금융거래정보에 관한 부당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기관은 명의인의 서면상 요구나 동의를 받지 않고는 그
금융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할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금융정보의 비밀보장 강화조치는 금융거래의 실명화를 유도하기 위한
하나의 보완장치인 셈이다.

그러나 금융실명제 실시 초기에는 이 비밀보장제도가 너무 엄격히 적용돼
범죄수사 등 공공목적을 위한 금융정보이용마저 어려웠기 때문에 지난해
12월 긴급명령 제4조(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령)를 개정하였다.

비밀보장제도와 공공목적을 위한 정보이용이 조화롭게 운용될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금융소득종합과세의 도입은 금융실명제의 완결판이라고 할수
있다.

금융소득종합과세는 조세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금융실명거래의 실효성을
제고한다는 목적하에 94년12월에 소득세법을 개정해 실시내용을 확정했고
96년1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93년의 금융실명제 실시와 시차를 두고 시행되는데서도 알수 있듯이
금융종합과세는 금융실명제 실시 때와 마찬가지로 실물경제와 금융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등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종합과세가 아직 시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시 2년을 조금 지난
금융실명제가 당초의 목적대로 성공을 거두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할수 있다.

지표상으로 실명제 이전과 이후는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시행 2년 동안의 금융실명제 진척 상황을 살펴보면 먼저 95년6월말 현재
실명확인율은 96.9%로서 이전에 비해 수치가 크게 높아졌다.

이같은 수치를 근거로 삼으면 실명제의 조기 정착으로 판단할 수도 있으나
시행초기부터 차명계좌라는 안전판을 허용함으로써 완전한 실명거래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가명계좌는 시행초기 두달동안의 실명전환 의무기간중에 97.4%가 실명화
됐고 지난 6월말 현재 98.5%로 착실한 실명전환 실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차명계좌는 금융실명제하에서도 얼마든지
거액의 자금을 은닉할 수 있는 도피처를 제공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차명계좌의 성격상 그 전체규모가 쉽게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명인과 차명사용인간 적당한 합의만 이뤄진다면 차명예금은 장기간
당국의 눈을 피해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행 2년을 넘기고 있는 금융실명제는 내년부터 도입될 금융소득종합과세
제도에 의해 완전한 골격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차명계좌의 문제는 종합과세하에서도 여전히 해결키 어려운 문제점
으로 남을 것이다.

종합과세 이후에도 여전히 합의된 차명의 가능성이 남아 있을 뿐아니라
예전보다 증가할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금융인의 윤리의식 제고 등과 같은 금융관행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활동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