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3일 범경제계가 참여한 긴급회의를 열어 "비자금파문"에 대해
대국민사과성명을 발표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새로운 재계상을 정립하겠다고
결의한 것은 이 사건 자체가 재계전반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짐으로써 나라
경제가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리라는 위기감에서다.

특히 참석범위를 전경련회장단에 그치지 않고 상의 무협 경총등 경제단체
외에 30대그룹총수 전반으로 넓힌 것은 그만큼 사안자체의 중대성을 감안한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비자금관련기업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와중에서 이처럼 신속한 입장정리에 나선 것은 사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경제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때문이다.

이날 회의의 주조는 국민에 대한 "사과"였다.

전경련은 성명서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기업인들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데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며 깊이 자성한다"는 자기반성으로 일관
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결의가 반영된 것으로 볼수 있다.

이는 그동안 어떤 형태로든 재계가 비자금의 젖줄역할을 해온데 대한
"속죄"의 뜻을 표명하지 않고는 악화된 국민감정을 누그러뜨릴수 없다는
판단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 재계차원에서 다른 선택이 없는 "해법"이기도 하다.

기업인의 음성적인 정치자금제공이 자의에 의한 것이었든, 타의에
의해서였든 과거의 낡은 관행이었다.

그것이 오늘의 사태를 야기하게 된데 대한 "책임의 통감"을 전제하지 않고
는 사태의 원만한 수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상황인식이 이날 회의
참석자들의 대체적인 정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날 재계의견을 집약한 대국민사과성명에 "사태의
조기수습"을 건의하는 내용이 빠져 있고 대신 김영삼대통령 정부출범이후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없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이에대해 황정현부회장은 "참석한 재계총수들이 이번만큼은 진솔하게 사과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번 사태의 관련 기업에 대한 여론이 최악의 상태로 나빠져 있는만큼
재계가 뼈를 깎는다는 각오로 국민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
사태가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총수들의 의견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재계가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이번 사태로 인해 기업들의 정상적인
경영활동공백이 장기화됨으로써 새해 사업계획수립지연 투자마인드위축
기업이미지실추에 따른 해외사업및 수출차질등으로 여파가 확산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에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연루돼 있음에 따라 자칫 재계의
공멸을 초래하지 않을까하는 위기감도 크다.

따라서 재계가 철저히 "국민에 대한 사과"로 일관한 것은 이번 사태가
가능한한 조기에 마무리됨으로써 기업인들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전념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충정"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재계는 이날 회의에서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보다 공정하고
깨끗한 기업경영을 통해 국민의 신뢰속에 국민과 함께하는 기업인상을 이뤄
나갈 것을 결의했다.

또 어떠한 경우이든,어떠한 명분이든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른바 "자정선언"이자 검은 돈거래를 통한 "정정유착의 단절선언"인
셈이다.

이는 이번 사태에서 보듯 정치자금에 대한 과거의 해묵은 관행이 재계를
뿌리째 뒤흔들 수도 있는데 따른 자구노력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재계는 이번 파문의 충격파가 지난 90년 5.8부동산 강제매각조치당시
대기업들이 "죄벌" "부동산투기범"으로 매도당했을 때보다 더한 최악의
위기상황을 몰고 왔다고 보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김영삼신정부출범이후 정치자금제공을 중단한데 이어
국가경쟁력강화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가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
대국민이미지를 거의 회복하고 있는 마당에 이번 사태는 또다시 재계에 씻기
어려울 만큼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이번 기회에 과거의 낡은 관행이었던 정치자금제공과 정경유착단절의 의지
를 분명히 하고 재계의 자정노력을 가시화하지 않는한 국민의 기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재계는 이날 회의에서 또 "국민속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대.중소기업
협력증진, 투명하고 깨끗한 경영, 권력에 의지하지 않는 공정경쟁풍토조성,
국제경쟁력제고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흐름에서 재계가 변신에 주력함으로써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미지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아무튼 재계는 이번 대국민사과및 자정선언을 통해 어떻게든 비자금파문이
조기에 수습됨으로써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기업들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전념할수 있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