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안강민대검중수부장의 정례 브리핑은 모처럼만에 활기를 띠었다.

안중수부장이 2일 오후 3차소환된 이현우전청와대경호실장의 조사 결과,
"노태우전대통령과 기업인들과의 회동을 대부분 주선한 이전실장이 돈을
준 기업들의 명단을 기억나는대로 진술했으며 그 수는 "상당한 것""이라고
말하자 기자들은 적잖이 긴장하는 분위기였다.

검찰이 드디어 재계 수사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것
이었기 때문이다.

안부장은 이어 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과 배종렬전한양그룹회장을 1차
소환대상자로 공식지명했다.

정회장은 동화은행 3개계좌 3백69억원을 포함,노씨의비자금 6백억여원을
실명전화하는데 깊이 관여한 사실이,배전회장은 계좌추적과과거 수사자료
등을 통해 2백억여원의 돈을 준 혐의가 포착된데 따른 것이라고 안부장은
설명했다.

안부장은 또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이 노씨 비자금중 수백억원을 실명전환한
사실도 확인해 줬다.

따라서 2일 중국에서 귀국예정을 돌연 변경, 현재 폴란드에 체류중인
김회장도 귀국즉시 소환될 것이 확실시된다.

검찰의 이같은 움직임은 한때 난항을 겪는 것으로 보이던 수사진행속도가
이씨의 진술을 계기로 급진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게 하고 있다.

검찰은 우선 이씨를 통해 조사대상 기업의 범위를 확실히 잡아 놓을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 검찰관계자는 한 기자가 (특정기업을 지칭하며)"이 기업도
조사하느냐"고 묻자 "그 기업은 51대 기업이지 않는냐"고 농담, 조사대상
기업이 최소한 50대기업까지는 이르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은 또 94년 2~5월의 6공비자금 내사를 통해 확보한 자료까지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내사과정에서 일부 대기업총수들은 "이전실장이
면담을 주선하면서 성금과 함께 해당기업의 현안을 준비해오라고 했다"는
진술을 받아 놨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이 기업인 조사에 대해서는 조사방법을 소환조사에만 국한하지
않고 방문조사등 탄력적인 방법을 적용할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도 수사
전개를 원활히 하는데 일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안부장은 "모든 기업을 소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율곡비리등 대형국책사업에 연루된 기업 <>6공시절 급부상한 기업
<>노씨와 인척관계를 맺고있는 기업 <>노씨의 비자금 관리에 개입한 기업등
10여개 기업에 대해서는소환하겠지만 통상적인 정치자금을 제공한 나머지
기업에 대해서는 방문조사등 다각적인 조사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정치권이 국정운영 정상화를 위해 조기수습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의 재계수사가 평탄대로만을 달릴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검찰주변에서는 무엇보다 소환기업의 선별및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의
수위를 놓고 검찰이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6공 당시 거의 모든 기업이 노씨에게 돈을 건네줬다는 것은 상식인
만큼 이들을 모두 소환조사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원 사법처리는 더욱
불가능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법처리 결정시기가 임박했을 때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게 어떤
처리기준을 마련해야 하는냐가 검찰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다.

또 재계수사를 신중히 해달라는 정치권의 계속되는 요구와 3일 오전11시
전경련의 대책회의등도 검찰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검찰의 수사는 재계전반으로 수사를 확대
하기 보다는 "선별적인 소환과 최소한의 사법처리"쪽으로 수순을 밟을 것
이란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검찰은 이같은 선상에서 노씨 자금의 운용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한보 정총회장과 지난 93년 검찰수사과정에서 이미 혐의가 확인한 배전한양
회장을 "1번타자"로 선발한 것 같다.

<윤성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