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어수선해졌다.

1일 노태우전대통령이 비자금건으로 검찰에 출두함에 따라 다음 소환대상은
"기업인"이 될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정태수한보그룹 회장이 금명간 소환될 "0순위"로 꼽히고 있다.

그와 함께 노전대통령 비자금사용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K H W그룹의 총수 내지 측근 기업인들도 우선 소환대상으로 거명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소한 10여개 그룹의 총수등의 직접 소환타겟이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한마디로 검찰의 대기업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다.

기업들은 이에따라 검찰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리 그룹도 대상이냐" "대상이라면 총수를 직접 부를 것이냐, 아니면
측근 임원이냐" 등이 주요 관심사다.

물론 수사내역이 어떤 것들이 될지도 빼놓을 수 없는 체크 포인트다.

<>.검찰 소환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그룹들은 나름의 막바지 물밑 로비에
부산하다.

총수의 직접 출두만은 피하기 위해서다.

총수가 검찰청사에 출두해 조사를 받게 될 경우 입게 될 유.무형의 타격이
워낙 클 것이란 판단에서다.

대외적인 그룹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물론 인사와 사업계획 등 중요
사안의 진행이 올 스톱될 것은 불문가지라는 것.

H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룹 총수의 검찰 소환 자체는 몇시간만에 끝날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소환을 전후해 상당기간동안 화급을 요하는 특별한 안건을
제외하고는 모든 보고와 결재가 중단되는 것이 상례"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소환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들은 과거의 예에 비추어 총수가
직접 돈을 건네지 않은 경우 해당 최고경영자나 임원이 검찰에 출두하는
방식의 "절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대책"을 수립중이다.

<>.재계는 검찰 수사가 "속전속결"로 마무리될 것으로 내다보는 분위기다.

S그룹 관계자는 김영삼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조성건에
대해 "명백한 부정축재일 뿐"이라고 "개념"을 정리한 것과 관련, "향후
검찰의 수사포인트가 노전대통령 개인의 축재과정에 맞춰질 뿐 기업인들은
주요 과녘에서 제외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다른 S그룹 관계자는 "정보에 따르면 검찰은 이미 수사대상 기업들의
혐의내역을 완벽하게 조사 완료해놓은 상태"라며 "실제 소환 조사때는
기내사 사안에 대한 확인절차에 주력할 뿐 새로 좌판을 벌이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속전속결론"의 추정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중국 강택민 국가주석이 한국을 공식 방문하는 13일 이전까지는
''비자금 정국''이 일단락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재계의 이같은 "조기 매듭"에 대한 낙관 분위기는 자금시장에서도 확인
되고 있다.

기업들을 압박하는 각종 "연루설"이 흉흉하게 나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금리가 하향안정세를 보이는 등 시중 자금사정이 넉넉한 장세를 계속
하고 있다.

1일 현재 대표적 단기 기업금리지표인 3개월만기 CP(기업어음)할인금리는
연 12%를 밑돌고 있어 9월의 13%선보다 1%포인트 이상 내려앉은 상태다.

S투자금융 관계자는 "예전엔 대형 사건이 터지면 기업들이 너나없이 자금을
미리 확보하려는 "돈 사재기 가수요"가 한바탕 회오리를 일으켰으나 요즘엔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다"며 "한마디로 이번 비자금 시국이 조기 수습될
것을 낙관하고 있는데 따른 현상"이라고 말했다.

<>.해외 체류중인 대기업그룹 총수들이 이번 주말을 전후해 대부분 귀국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도 "조기 매듭설"과 관련돼 주목을 받고 있다.

2일 김우중대우그룹회장과 최종현선경그룹회장이 돌아오는 것을 비롯해
이건희삼성그룹회장은 4일께, 나승렬거평그룹회장은 6일께 각각 귀국할
예정이라는 것.

지난달 11일 영국 윈야드 복합가전단지 준공식에 참석키 위해 출국했던
이삼성회장은 독일등지를 거쳐 현재는 일본에 체류, 자동차사업과 미래첨단
사업을 구상키위해 현지 재계인사들과 만나고 있다고 삼성측은 밝혔다.

김대우회장은 지난달 23일 출국, 미국 영국 폴란드 등을 거쳐 현재 중국
북경에 머물고 있다.

최선경회장은 지난달 김영삼대통령의 캐나다 국빈방문을 수행, 출국한 뒤
미국에 머물러 왔다.

나거평회장은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자격으로 해외 전지훈련중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을 격려키 위해 유럽과 동남아 방문을 위해 출국
했었다.

<>.이번 비자금 파문에 휩싸인 일부기업들은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에도
차질을 빚을 예상이다.

한보그룹은 상시채용제를 활용하고 있으나 비자금 관련 보도이후 입사
지원서 접수량이 급감해 채용인원 목표를 못채울 전망이다.

동방유량도 지난해의 30명보다 더 많은 신입사원을 하반기중 뽑을 계획
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전형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비자금사건이 터져나온 뒤 한동안 숨죽이고 있던 전경련이 3일 회장단
회의를 소집키로 해 눈길을 끈다.

전경련은 그동안 주요그룹 회장들이 외유를 나갔다는 등의 이유로 비자금
사건이 터진 뒤에도 일체의 공식.비공식 대처방안 논의를 보류하는등
"신중"을 기해왔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와 관련, "회장단 회의를 열기로 했다는 것은 재계가
여유를 되찾았다는 하나의 반증"이라며 "이번 회의에서는 재계의 자정 결의
등 "변신 노력"을 보여주기 위한 논의가 주로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비자금 파문이 재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기업들은 권력과의
"불가근 불가원"의 필요성을 새삼 절감하는 눈치.

5.6공시절 급속한 사세확장으로 눈길을 모았던 대부분 그룹들이
노전대통령과의 "비자금 커넥션"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반면 일부 그룹은
승승장구를 해왔으면서도 별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

대표적인 곳이 S그룹으로 5.6공시절 각종 특혜의혹을 받으면서 사업을 대거
확장해 왔으나 정작 이번 비자금건과 관련, 비리에 깊이 연루됐다는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를 들어 "역시 S그룹이다. 어떤 로비력을 동원했었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불가근 불가원 원칙에 충실했다는 점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한편 5.6공시절 신규사업 진출이 거의 없었던 L그룹측은 "권력과 유착
하거나 돈을 써가면서 사업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까닭에
80년대초까지만 해도 H.S그룹과 대등했던 사세가 상대적으로 기울게 됐다"고
"청렴"을 강조.

그러나 재계에서는 "지나친 "불가근"이 사업세계에서는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법인만큼 위험수위를 넘지않는 범위내에서의 "불가원"전략도
필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산업1부>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