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하면 제일은행이 한보그룹에 발목잡힐지 모른다"

제일은행이 지난 6월16일 한보그룹이 유원건설을 인수키로 했다고 발표
했을때 금융계에서는 이런 우려를 나타냈었다.

한보그룹의 자금출처가 미덥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불과 4개월만이다.

한보그룹이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을 기업자금으로 전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당연히 한보그룹의 유원건설인수도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물론 제일은행은 지난 6월 한보그룹과 맺은 유원인수 계약이 아직도 유효
하다고 밝히고 있다.

실사작업도 무난해 비자금파문과 관계없이 이달안에 유원인수를 매듭지을
수 있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계에선 한보그룹의 유원건설인수는 "물건너 갔다"고 치부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선은 한보그룹 자체가 문제다.

정태수총회장의 거취가 불분명해졌다.

한보그룹이 계속 존속할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한보그룹에 유입된 노전대통령 비자금의 몰수도 시간문제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한보그룹이 먼저 유원건설인수계약을 파기할 가능성이
높다.

자산보다 많을게 뻔한 부채를 떠안으면서까지 유원건설을 인수할 여력이
없는 탓이다.

제일은행이 먼저 계약을 없던 것으로 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지난 4월말현재 제일은행의 한보그룹에 대한 여신은 총6천3백99억원에
달한다.

한보그룹의 위상이 불안한 마당이라 이 여신을 온전히 회수할지도 의문
이다.

이런 상황에 유원건설에 대한 여신 4천2백82억원을 더하는 것은 무모할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제일은행은 유원건설에 대한 여신이라도 회수하기 위해선 한보그룹
이 아닌 제3의기업에게 유원건설인수를 타진할수 밖에 없다는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4개월여동안 실사작업도 난항에 부닥쳐 있는 상태다.

실사결과 제일은행은 유원건설의 자산을 초과하는 부채가 1천억여원정도
라고 보고 있다.

반면 한보그룹은 초과부채가 4천억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돈을 더 받겠다는 제일은행과 덜 내겠다는 한보그룹이 대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시각차가 워낙 커 비자금파문이 없었더라도 이달내 "정산"은 힘들다는게
금융계의 설명이다.

또 유원건설에 대한 7개의 다른 채권은행도 선뜻 계약조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당장 대성목재 채권은행인 조흥은행은 대출금을 다른 조건으로 전용해주지
않는한 인수계약에 동의할수 없다는 태도다.

따라서 한보그룹의 유원건설인수는 불가능에 가깝다는게 금융계의 중론
이다.

물론 유원건설처리를 위한 제일은행의 의지가 워낙 강한탓에 아직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실기업을 다른 "부실기업"에 인수시키려한 시도자체가 또 다른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제일은행은 그러나 "한보그룹이 이미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데다
자산 부채에 대한 실사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이달내 ''정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