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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에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 인상을 제한하는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것은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따른 유가 급등으로 취약계층이 받을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유가 상승기에는 ‘로켓’처럼 가격이 오르고 하락기에는 ‘깃털’처럼 천천히 내려가는 현상을 바로잡아 서민 경제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가 설정한 석유제품 가격 인하 폭이 예상보다 큰 데다 정유사가 볼 손실을 차후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방식이어서 사태가 장기화하면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유사 공급가에 ‘일괄 상한선’

주유소 휘발유값 1800원 안팎 예상…2주마다 가격 조정
산업통상부는 13일 0시부터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가격을 제한하는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1차 최고가격으로 보통휘발유는 L당 1724원, 자동차용 경유와 등유는 각각 1713원, 1320원으로 설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최고가격제란 정유 4사가 자율적으로 책정해온 공급가에 ‘일괄적 상한선’을 두는 방식이다. 정유사는 각 대리점(직영)이나 주유소(자영)의 실적과 경쟁 상황에 따라 L당 공급가를 깎아주거나 더 받아왔는데, 앞으로는 ‘이 가격 위로는 받지 말라’는 절대적 가이드라인이 생기는 셈이다. 주유소는 보통 공급가격에 마진 50~100원을 붙여 소매가격을 정하기 때문에 휘발유 가격은 L당 1700원대 후반~1800원대 초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차 공급가는 13일부터 26일까지 2주간 적용된다. 앞으로 2주마다 유가 상황을 반영해 새로운 최고가격을 고시한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국제 유가가 국내 가격에 반영되는 시차를 고려해 조정 주기를 2주로 설정했다”며 “매주 조정하면 가격 안정 효과가 떨어지고, 기간이 너무 길면 국제 시세와의 괴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주유소 소매가 ‘정밀 모니터링’

정부는 이번에 주유소 판매가(소매가)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지역별 임대료와 경영 전략이 상이해 일률적인 가격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대신 주유소들이 연쇄적으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도소매 가격 차 상위 30개 주유소’를 공표하고,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우수한 ‘착한 주유소’를 게시하는 프로그램을 조만간 마련한다.

또 정유사나 주유소가 가격 인상을 예상하고, 석유제품을 고의적으로 공급·판매하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 ‘석유제품 매점매석 행위 금지 등에 관한 고시’를 13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정유사는 올해 3~4월 석유제품을 지난해 같은 기간의 90% 이상 공급해야 하고, 주유소는 폭리를 목적으로 석유제품을 과다하게 구입·보유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한 사업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정유사가 국내에 제품을 공급하는 대신 수출 물량을 늘릴 것에 대비해 수출을 2025년 같은 기간 수준으로 제한하는 조치도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운영에 따른 정유사 손실액을 분기별 사후 검증을 거쳐 정부 재정으로 전액 보전해줄 계획이다. 정유사가 자체 원가를 반영해 손실액을 산정한 뒤 공인회계법인 검증을 거쳐 제출하면 전문가로 구성된 최고액정산위원회가 이를 검증하는 방식이다.

업계는 수출 물량 통제에 반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수출 비중이 60%로 평년보다 적어 수출 물량을 작년 수준에 맞추라는 것은 수익을 포기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태 장기화 여부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길어지면 정유사 재고가 줄고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당초 1800원대로 예상되던 휘발유 기준 최고가를 정부가 1724원까지 낮추면서 정부 재정 부담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2011년 이명박 정부가 기름값을 L당 100원 내리도록 압박했을 때 정유사의 분기별 영업이익이 7000억원가량 줄어든 전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훈/김리안/성상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