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신의 손 .. 양봉진 <경제부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손.
손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많다.
손이 큰 사람, 손이 따뜻한 사람, 손이 더러운 사람, 맨손으로 일어선 사람,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챈들러의 보이는 손
(Visible Hand), 심지어 공수래 공수거까지.
미국인들은 대통령의 손이 깨끗한 손이기를 기대한다.
대법원장의 주문에 따라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순간부터 다음
대통령이 뒤를 이을때까지 깨끗한 대통령의 손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기대
한다.
어쩌면 미국의 체제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대통령을 에워싼 법과 규정, 그리고 그물같은 감시망의 눈초리는 대통령의
손이 깨끗하게 유지되지 않을 수없게 만들고 있다.
백악관에 들어가는 미국 대통령은 맨손으로 입주해야 한다.
주식이나 채권에 굴리던 돈이 있으면 이를 투자신탁회사 등에 맡겨야 한다
는 규정이 그 단적인 예다.
이 규정에 따라 대통령은 일단 손을 깨끗이 털고 백악관에 들어서야 하며
그 자리를 그만 둘때까지는 자기 돈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됐는지 조차도
문의할 수없게 되어 있는 계약(Blind Trust)에 서명해야 한다.
자기 돈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되고 있는지조차 알 수없게 되어 있다니.
우리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기 돈이 어느 어느 주식에 투자되어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알 수
있게 하면 대통령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그 주식들의 값을 올리기 위해
그릇된 정책적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에서 보면 이 규정의
취지를 쉽게 수긍할수 있다.
바로 이런 규정이야말로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든 원천이요, 선진화된
사회로 유지시키고 있는 지주라고 할 수있다.
우리 경제는 분명 자유시장경제라는 원칙위에 서있다.
자유시장경제를 떠받쳐주는 것은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
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많은 사람들에게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 준 위대한 손
이라는 것도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보이지않는 손이 "공동의" 번영을 보장하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
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덤 스미스 자신도 보이지않는 손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평화
(Peace)가 유지돼야 하고 쉬운 세제(Easy Tax)가 있어야 하며 합리적 법집행
(Reasonable Administration of Justice)등 세가지 구비요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전쟁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세금이 엉망이면 보이지 않는 손은 정말로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릴뿐 아니라
모든 손을 검은 손, 더러운 손으로 뒤바꿔 놓을 수있다.
특히 법집행이 엉망이 되면 검은 손은 통제불능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평화 세금 합리적 법집행보다도 더 중요한 필요조건은 다름아닌
"신의손"이다.
스미스 자신도 그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신의손"을 의미한다고 강조
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통해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100% 자기이익만 생각하는 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챙기면서도 남의 것도 의식할 줄 아는" 좋은 "신의손"이었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파문은 온 나라를 실망과 좌절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고 있다.
그 자신 스스로 국민앞에 사과하는데까지 이르렀다.
그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구속과 처벌을 원하고 있는
듯하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없다.
모든 궁극적 책임은 노씨 본인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을 놓고 가만히 반성해 보면 이는 우리의 사회구조와
관습이 그대로 투영된 사회경제적 병리현상임에 틀림없다.
굳이 따지고 든다면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봐야 할게다.
노 전대통령 자신은 물론 그에게 돈을 건넨 검은 손, 또 가져다 주지 않을
수없게 만든 노씨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정황, 그런 정황이 계속되는데도
이를 시정하려 들지 않는 감시인들의 태만과 직무유기.
제대로 하려면 노 전대통령과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포괄기소돼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리도 좋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맞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대통령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건 아니다.
좋은 대통령도 자칫하면 유혹에 빠질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인의 접근방식을 거울삼아 우리도 주변의 허술한 감시망과
규정, 법을 하나하나 고쳐 나가야 할것이다.
"죄없는 자, 이 여인에게 먼저 돌을 던지라"는 예수의 충고는 요즈음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금언이다.
돌 던지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0일자).
손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많다.
손이 큰 사람, 손이 따뜻한 사람, 손이 더러운 사람, 맨손으로 일어선 사람,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챈들러의 보이는 손
(Visible Hand), 심지어 공수래 공수거까지.
미국인들은 대통령의 손이 깨끗한 손이기를 기대한다.
대법원장의 주문에 따라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순간부터 다음
대통령이 뒤를 이을때까지 깨끗한 대통령의 손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기대
한다.
어쩌면 미국의 체제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대통령을 에워싼 법과 규정, 그리고 그물같은 감시망의 눈초리는 대통령의
손이 깨끗하게 유지되지 않을 수없게 만들고 있다.
백악관에 들어가는 미국 대통령은 맨손으로 입주해야 한다.
주식이나 채권에 굴리던 돈이 있으면 이를 투자신탁회사 등에 맡겨야 한다
는 규정이 그 단적인 예다.
이 규정에 따라 대통령은 일단 손을 깨끗이 털고 백악관에 들어서야 하며
그 자리를 그만 둘때까지는 자기 돈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됐는지 조차도
문의할 수없게 되어 있는 계약(Blind Trust)에 서명해야 한다.
자기 돈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되고 있는지조차 알 수없게 되어 있다니.
우리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기 돈이 어느 어느 주식에 투자되어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알 수
있게 하면 대통령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그 주식들의 값을 올리기 위해
그릇된 정책적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에서 보면 이 규정의
취지를 쉽게 수긍할수 있다.
바로 이런 규정이야말로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든 원천이요, 선진화된
사회로 유지시키고 있는 지주라고 할 수있다.
우리 경제는 분명 자유시장경제라는 원칙위에 서있다.
자유시장경제를 떠받쳐주는 것은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
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많은 사람들에게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 준 위대한 손
이라는 것도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보이지않는 손이 "공동의" 번영을 보장하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
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덤 스미스 자신도 보이지않는 손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평화
(Peace)가 유지돼야 하고 쉬운 세제(Easy Tax)가 있어야 하며 합리적 법집행
(Reasonable Administration of Justice)등 세가지 구비요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전쟁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세금이 엉망이면 보이지 않는 손은 정말로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릴뿐 아니라
모든 손을 검은 손, 더러운 손으로 뒤바꿔 놓을 수있다.
특히 법집행이 엉망이 되면 검은 손은 통제불능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평화 세금 합리적 법집행보다도 더 중요한 필요조건은 다름아닌
"신의손"이다.
스미스 자신도 그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신의손"을 의미한다고 강조
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통해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100% 자기이익만 생각하는 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챙기면서도 남의 것도 의식할 줄 아는" 좋은 "신의손"이었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파문은 온 나라를 실망과 좌절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고 있다.
그 자신 스스로 국민앞에 사과하는데까지 이르렀다.
그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구속과 처벌을 원하고 있는
듯하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없다.
모든 궁극적 책임은 노씨 본인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을 놓고 가만히 반성해 보면 이는 우리의 사회구조와
관습이 그대로 투영된 사회경제적 병리현상임에 틀림없다.
굳이 따지고 든다면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봐야 할게다.
노 전대통령 자신은 물론 그에게 돈을 건넨 검은 손, 또 가져다 주지 않을
수없게 만든 노씨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정황, 그런 정황이 계속되는데도
이를 시정하려 들지 않는 감시인들의 태만과 직무유기.
제대로 하려면 노 전대통령과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포괄기소돼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리도 좋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맞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대통령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건 아니다.
좋은 대통령도 자칫하면 유혹에 빠질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인의 접근방식을 거울삼아 우리도 주변의 허술한 감시망과
규정, 법을 하나하나 고쳐 나가야 할것이다.
"죄없는 자, 이 여인에게 먼저 돌을 던지라"는 예수의 충고는 요즈음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금언이다.
돌 던지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