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국토면적이 4만1,288 로 좁은데다가 평지가 10%에 지나지
않는 산악구가이고 이렇다할 지하자원도 없는 나라다.

주산물이라고 해 보아야 농산물과 암염이 고작이니 사람들이 살아가기
에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다.

17세기 이전까지 이 나라 남자들이 프랑스 이탈리아 교황청의 용병으로
나가 가솔을 먹여 살려야 했던 것도 그때문이다.

그러나 스위스는 오늘날 그 악조건을 극복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1,2위가 되는 당당한 경제부국이 되었다.

그것은 근면한 국민성과 높은 과학기술수준, 알프스의 관광자원,
자유무역주의의 추구, 중립정책에 따른 전시당비의 배제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으나 은행업에서 볼수 있는 약소국의 지혜도 큰 몫을 해 왔다.

물론 원자재 전량을 수입해다가 부가가치가 높은 금속 정밀기계
화학등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선진국형 무역, 관광수입과 해외투자의
이자소득등이 스위스 경제발전의 주된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 나라가 식량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가운데서도 국제수지면에서
흑자기록을 계속할수 있었던 것은 은행업의 중심지가 된 덕분이었다.

스위스는 2차세계대전 직전 유태계 독일인들의 은행예금내용을
공개하라는 나치스의 압력이 거세어지자 1934년 예금비밀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었다.

B형계좌의 도입이었다.

변호사나 재산관리인중 대리인이 예금주를 알고 있다는 서약만 하면
개설해 주고 형사사건에 연루되었거나 탈세와 상속문제가 걸린 사안이
아니면 사직당국도 관련자료를 요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것이 스위스은행을 외국자본의 가장 완전한 피난처가 되게 됐다.

그렇게 해서 얻은 이득이 한때 국민총생산의 15%에 이르기도 했다.

스위스의 이러한 생존전략은 거부들의 재산피난처 이외에 독재자나
법죄집단들의 비자금이나 검은 돈의 은닉처가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란의 팔레비 전국왕, 필리핀의 마르코스 전대통령, 파나마의 노리에가
전대통령이 부정축재 재산을 예치했고 금년에는 동유럽의 마피아가 검은
돈을 세탁하는 곳이 되어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난 91년 B형계좌가 폐지된뒤 예전처럼 외국자본이 흘러들어 오고
있진 않지만 아직도 "스위스은행=비밀예금"이라는 인상을 벗어 버리
못하고 있다.

때마침 스위스 한국국재대사관이 노전대통령의 비자금계좌조사를
해달라는 한국 당국의 요청을 받을 경우 이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8월 스위스사법당국이 마르코스의 은닉재산(4억7,500만달러)을
필리핀정부에 반환하라는 판결이 내린 마당이고 보면 관심이 가지
않을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