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에서 종합기업으로"

신세길삼성물산사장은 요즘 틈만나면 이 한마디를 임직원들에게 주입
시킨다.

"변신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메시지와 함께.

변신을 강조하는 것은 신사장뿐만이 아니다.

표현은 달라도 언제부턴가 종합상사사장들 사이에는 변신이라는 용어가
화두가 되고 있다.

종합상사들을 이처럼 변신이냐 쇠락이냐의 벼랑으로 몰아대는 "힘"은
한마디로 "영업환경변화"라고 하는 바람이다.

그것도 안팎 양쪽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이다.

안에서는 제조업체들이 종합상사 못지않은 시장개척력과 정보력을 갖추면서
"수출창구"로서의 상사기능이 퇴색해가고 있다.

밖으로부터는 일본종합상사라는 버거운 경쟁상대들이 몰려들고 있다.

수출영업 위주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는 국내 종합상사들에 이런 변화는
필연적으로 수익기반의 약화를 초래한다.

가령 7개 종합상사의 지난해 영업실적만 봐도 매출액대비 경상이익률이
0.27%에 그쳤다.

제조업분야 대기업의 경상이익률 3%(한은기업경영분석)에 비해 10분의
1도 안된다.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는 종합상사들의 변신노력은 "수익기반 다각화"를
키워드로 한다.

새로운 돈벌이를 찾기 위한 상사들의 처절한 노력은 상사맨들 스스로
"굶주린 이리"(LG상사 김동헌이사)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러면 사업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돈을 더 잘 벌 것인가.

상사들이 당장 손을 대고 있는 분야는 무역부문내에서의 영업구조 "개편"
이다.

수출을 대행해서 받는 수수료는 1% 미만이다.

이에비해 수입영업이나 3국간 거래에서는 훨씬 짭짤한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지난 상반기중 7개 종합상사의 수입액(115억달러)이 작년 상반기보다
66%나 늘어난 것도 이런 타산이 작용해서다.

(주)쌍용의 경우는 아예 올해 사업계획에서부터 수입과 수출목표를 같은
규모로 잡고 있다.

또 삼성물산 현대종합상사 등 다른 회사들도 중기사업계획등을 통해 "수출
과 수입이 균형을 이루는 사업구조 지향"을 선언하고 있는 형편이다.

상사들은 무역부문외에 새로운 사업영역을 발굴하는데도 열을 올리고 있다.

그중에도 상사들이 요즘 한창 눈독을 들이는 분야는 유통업이다.

특히 삼성물산 현대종합상사 (주)대우 등 외형기준 상위 3개 종합상사는
최근 중장기발전전략의 일환으로 한결같이 "유통업 진출"을 선언, 유통업
분야에서 이들 "빅 3"간의 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이중 삼성물산은 최근에 마련한 2004년까지의 장기비전에서 유통업을
"CASH COW"화 한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CASH COW란 "현금을 짜내는 젖소"라는 뜻.

유통업을 회사의 현금조달원으로 삼겠다는 기대가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는 오는 2000년까지 8개의 복합점포와 5개의 물류센터 30여개의
하이퍼마켓을 개점할 계획이다.

그리하여 2000년에는 43개 점포에 연간외형 3조5,000억원을 달성, 국내
유통업계의 "빅5"로 도약한다는게 삼성의 구상이다.

현대종합상사도 지난 8월에 발표한 2000년의 비전에서 유통업진출계획을
밝히고 있다.

현대의 사업구상은 일단 전자유통사업에 진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계열업체인 현대전자가 A/V 및 컴퓨터.통신기기분야를 강화하는 것과
연계해 전국 주요 도시에 유통망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97년까지 200평규모의 양판점을 30여개 설립하여 2000년에는 유통부문
매출목표를 1조1,000억원으로 잡고 있다.

(주)대우는 지난 2월 유통사업본부를 발족시키고 자동화 창고나 쇼핑몰
등의 유통업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대우는 해외유통분야에도 일찌감치 눈을 돌려 현재 러시아와 미얀마에
각각 2개의 "대우플라자"라고 하는 양판점을 운영중이며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에도 대우플라자를 상륙시킬 예정이다.

LG상사도 현재 홍콩의 리 앤 풍그룹, 일본의 미쓰비시상사, 영국의
트라팔가하우스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 중국 판위시에 초대형 유통단지조성
을 추진중이다.

또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LG그룹 제품 전문매장을 설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

(주)쌍용은 가죽의류 브랜드인 렛츠씨의 유통망을 운영하고 있으며 용산
전자상가에 게임용 소프트웨어 매장도 갖고 있다.

또 효성물산은 작년부터 유통업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창고형 할인매장
등의 분야를 검토중이다.

유통업과 함께 최근 종합상사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분야는 해외
자원개발사업이다.

"해외자원개발이야말로 종합상사의 무기인 자금력과 정보력을 최대한 활용
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LG상사 김동헌이사)

현대종합상사는 캐나다에서 연아연정광생산을 시작했고 삼성물산은 최근
카자흐스탄의 동제련소인 DMK사를 위탁경영키로 했다.

이밖에도 종합상사들은 해외자원개발 광고업 영상사업 등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수익기반을 찾아가고 있다.

현대종합상사는 지난 7월 금강기획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종합상사의 강점인 해외지사망과 금강기획의 사업영역을 접목시키기로
한 것이다"(김상명이사)

양사는 우선 해외광고영업에서부터 협력관계를 구축, 앞으로 테마파크
공연 영상 캐릭터 등의 사업분야에도 공동투자할 계획이다.

대우는 그룹의 통신네트워크인 DGN(대우글로벌 네트워크)을 활용한 정보
통신업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LG상사 역시 그룹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보통신사업(데이콤인수)에
한 몫 낄 채비를 갖추고 있다.

삼성물산은 해외주요거점을 중심으로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외부기업에
제공, 수익사업화하고 위성통신을 통한 종합멀티미디어 사업을 전개할 방침
이다.

종합상사들의 이같은 변신은 이제 단순히 영역파괴라는 단계를 지나 새로
진출한 사업이 하나의 독립사업단위화 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물산이 오는 12월 삼성건설과의 합병을 계기로 "부문별 대표제"를
도입키로 한게 그 첫 신호다.

국내 상사업계에도 일본에서처럼 사내회사제가 보편화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