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평의 기업인수 행진은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

17일 포스코켐과 정우석탄화학 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된 거평은 이로써
올들어서만 한국시그네틱스를 포함해 굵직한 회사 3개를 인수하게 됐다.

지난해 대한중석을 전격 인수한 이후 재계에 "거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나승렬거평그룹회장(51).

본사 유화선부국장겸 산업1부장이 이날 포스코켐 입찰직후 나회장을 서울
논현동 거평본사 회장실에서 만나 보았다.

포스코 센터에서 열린 입찰에 직접 참여했던 그는 낙찰의 기쁨을 감추지
못한채 포스코켐 인수의 뒷얘기와 자금조달계획,앞으로의 그룹사업구조등에
관해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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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유화선 < 부국장대우 산업1부장 > ]]]

-우선 축하드립니다. 입찰장엔 회장님이 직접 나가셨지요. 영풍과의 가격
차이가 박빙이었다면서요.

<>나회장=아슬아슬했습니다. 우리가 1천1백51억원을 써냈는데 영풍하고는
15-16억원정도 차이밖에 안났다는군요.

-지난해 대한중석을 인수할때도 입찰장에 직접 나가셨지요. 오너가 직접
입찰에 참여하는게 흔한 일은 아닌데요.

<>나회장=본인이 직접 입찰가격을 써내야 나중에 후회가 없는 법입니다.
또 현장분위기나 상대방의 눈빛을 직접 봐야 대충 감을 잡을 수 있거든요.

입찰장 상황에 따라 금액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지요.

-최종 응찰가격은 언제 결정하셨습니까. 임원들과 상의는 얼마나
하셨는지요.

<>나회장=최종 가격은 입찰장에 들어가 막판에 결정했습니다. 이런 것은
절대 남하고 상의하지 않는다는게 저의 철칙이지요.

역시 믿을 수 있는건 자기 자신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했다가
비밀이 새나가면 모든게 허사이지요.

물론 믿을 만한 사람도 있지만 "천기누설"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번
응찰가격은 마지막 순간에 장조카인 나선주 (주)거평사장에게 정도나 얘기
했습니다.

-포스코켐과 정우석탄화학의 경우 1,2차 입찰때는 참여하지 않았다가 3차
입찰에 뒤늦게 뛰어들었는데요.

1,2차때는 왜 응찰하지 않았지요.

<>나회장=그때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직원들이 너무 감을 못잡아
인수가액을 1천7백억-1천8백억원정도로 추정했는데 그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지요.

저는 당시 1천2백억원정도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2차
입찰때는 아예 참여할 생각도 않했지요.

그런데 1,2차 입찰이 모두 유찰된뒤 포철이 애경유지와 수의계약을 추진
하는데 9백60억원 정도의 가격이 거론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포철에 다시 입찰에 부칠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들어주지 않더군요.

-하지만 애경유지는 공정거래법에 걸려 결과적으로 포스코켐을 인수하지
못했지요.

그걸 보면 거평이 운이 좋기는 좋은 모양입니다.

<>나회장=그러게 말입니다. 애경과 수의계약이 되려니 하고 포스코켐은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산되고 결국 포철에서 다시 우리쪽에 손짓을 하게 됐지요.
이젠 됐구나 싶었는데 입찰일을 2-3일 남겨놓고 영풍이 나타난 거예요.

사실 꽤나 긴장했습니다. 그쪽 회장이 지난주말엔 포항과 광양의 공장을
직접 둘러 봤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거 들러리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요.

-포스코켐과 정우석탄화학은 사실상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같은 회사로도
볼수 있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 나갈 생각입니까. 혹시 합병도 고려하고 계십니까.

<>나회장=정우석탄화학의 경우 주식시장에 상장해 공개할지, 포스코켐에
합병할지는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정우의 경우 공개를 통해 공기업적인 경영문제점을 개선해
나갈 구상입니다.

기술개발인력을 정비하고 외국기술을 도입하는등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면
정우석탄화학도 전망이 밝다고 봅니다.

-사실 업종으로 따지면 이번에 인수한 두 회사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게 볼
수도 있는데요.

그동안 거평이 기업을 인수할때마다 혹시 땅이라든지, 다른 것들을 보고
사들인게 아니냐는 얘기도 많았습니다.

<>나회장=그런 얘기는 나를 잘 몰라서들 하는 소리입니다. 물론 부동산이
있는 회사는 없는 회사보다는 경영상 유리하지요.

하지만 저는 부동산을 바탕으로한 건설업에는 별 취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땅을 사서 인가를 받고 무언가를 지어 분양하는 기획건설엔 장기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건설에는 관심이 많지 않아요.

부동산을 염두해 두고 거평의 기업을 인수한다는 평가는 잘못된 겁니다.

-부동산보다는 그 기업의 내용이나 전망을 보고 인수했다는 말씀이군요.

<>나회장=물론입니다. 지난해 인수한 대한중석은 초경공구를 생산하는
탄탄한 기업입니다.

인적자원도 좋구요. 대한중석이 원래 포철의 모회사이거든요. 그래서
대한중석을 예정가에 1백억원이나 얻은 6백71억원을 주고 사들인 것입니다.

한국시그네틱스의 경우도 서울 염창동 공장이 7천5백평인데 반도체 공장의
평당 조성가가 5백만인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회사였고요.

-거평이 기업인수를 할때 마다 관심의 대상이 되는게 자금조달원 입니다.
포스코켐과 정우석탄화학 인수하는데 드는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계획
입니까.

<>나회장=자금조달 계획은 이미 세워져 있습니다. 대한중석이 현재 포철
주식을 88만주정도 갖고 있는데 이를 담보로 3백억원의 교환사채를 발행할
겁니다.

게다가 대한중석이 올초 증자를 했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만 6백억-7백억원
정도를 끌어 댈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현재 그룹내에 현금으로 갖고 있는 유보자금도 꽤 있고요.

-사실 그동안 일련의 공격적인 기업인수 과정에서 거평의 "돈줄"이 어딘지
에 관심이 쏠렸던게 사실입니다.

자금조달에 비결이라도 있으십니까.

<>나회장=비결이랄게 있나요. 다만 재무제표를 읽을 때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보고 기획건설을 통해 부동산을 유효적절하게 활용
한다는게 방법이라면 방법이지요.

예컨대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할때 저는 유동성을 가장 중시합니다.
그것도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는 유동성을 집어내는게 특징이지요.

지난번 대한중석을 인수할때도 포철주식은 재무제표상엔 고정자산으로
분류돼 있었는데 저는 이걸 엄청난 유동자산으로 본 겁니다.

재무제표의 이면을 읽는 법은 과건 롯데삼강 경리과장 경력이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두회사 인수로 화학업종에 새로 진출하게 됐는데요. 앞으로 그룹
사업구조는 어떻게 가져 가실 생각입니까.

<>나회장=거평의 현재 사업구조는 크게 제조업 건설업 유통업등 3대
업종군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체계는 계속 될 것입니다. 다만 제조업의 경우 대한중석의
기계금속과 한국시그네틱스의 반도체에 이번에 포스코켐등의 석유화학이
추가된 셈이지요.

이 3개 업종을 기본축으로 해서 앞으로도 고기술 고부가가치의 영역으로
업종을 계속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또 계획하고 있는 업종 진출이나 인수하고 싶은 회사가
있으십니까.

혹시 금융회사를 하나쯤 하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나회장=제조업도 소비재 제조보다는 산업재 제조를 통해 건실한 구조를
유지해 나갈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중석 한국시그네틱스 포스코켐등으로 기계공구 반도체 화학
업종을 영위하게 됐으니 어느정도 틀은 갖췄다고 봅니다.

이제 거평의 기업인수도 "종착역"에 다다랐다고 볼수 있습니다. 금융사
인수의 경우 지난번 새한종금이 입찰에 부쳐졌을때 관심을 가졌으나 가격
차이가 너무 커 포기했지요.

앞으로 시간 여유를 갖고 금융기관 인수를 추진하겠지만 절대 무리하지는
않을 겁니다.

-거평은 주로 기업을 설립하기 보다는 인수해 그룹을 형성했는데요.
기업인수의 경우 남이 그린 그림에 덧칠을 하는 격 아닙니까.

차라리 기업을 새로 설립해 백지에 나름의 그림을 그리는게 편한 면도
있지 않나요.

<>나회장=새로 기업을 설립하면 시간이나 자금이 엄청나게 들어가지요.
투자효율성 면에서는 역시 기업인수가 빠릅니다.

기업인수는 "시간을 사는 경영전략"이지요. 그러나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절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는 피한다는게 지론
입니다.

거평이 그동안 주로 공기업을 인수해 온 것도 이런 이유이지요.

-다양한 업종의 기업을 인수해 그룹을 운영하다보면 서로 이질적인 조직
문화 탓에 어려움도 적지 않겠지요.

그룹의 일체감 형성을 위해 각별히 신경쓰시는게 있으십니까.

<>나회장=아직은 계열사간 문화가 달라 거평그룹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적은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체감 형성을 절대 강요하지는 않고 있지요. 강요한다고 하루아침
에 개선될 문제도 아니고요.

차리리 각 기업이 갖고 있는 장점과 특징을 살려가면서 서서히 조화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거평 자체가 원래 정형화된 문화를 갖고 시작한게 아닌 만큼 "제 3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나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요.

-기업을 하다보면 고비도 많았을 텐데요. 그동안 제일 큰 위기였다고 생각
되는 때는 언제였습니까.

<>나회장=사람의 인생이 순탄할 수 만은 없듯이 경영에서도 위기가 없을
순 없겠지요.

여러번의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그중에서도 최근의 일은 금년초 덕산그룹이
부도를 냈을 때였습니다.

당시 덕산사태이후 거평과 같은 신흥 중견그룹들의 자금악화설이 근거도
없이 나돌아 애를 먹었습니다.

또 새로운 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전면적인 세무조사를
받아왔는데 이게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마비시킬 정도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보면 철저한 세무조사를 통해 오히려 그룹의 재무
구조가 더욱 탄탄해지는 반사효과를 보기도 했으니 전화위복이라면 전화
위복이지요.

-덕산그룹 사태때는 "3산 1평"이라고 해서 호남지역 연고의 신흥그룹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는등 루머도 많았지요.

실제로 이중에선 덕산과 효산이 부도를 내기도 했고요. 이제 막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신흥그룹들이나 사업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다면..

<>나회장=그동안 한국의 기업역사를 보면 쉽게 일어섰다고 금새 망하는
회사들이 많았지요.

저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가 사업을 시작했는데 실패도 해봤습니다.
그때 느낀건 역시 월급쟁이와 사업가의 사고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점
이었어요.

당시 사업을 막시작했을때 실패한 경험을 되새겨 보면 그때는 너무 사람들
의 말을 많이 믿었지요.

계약서 보다 사람들의 약속을 신뢰했으니까요. 그러나 사업하는 사람은
절대 문서 이외에는 믿어선 안됩니다.

철저히 고민해서 자기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건 물론이고요. 그리고
남들이 한다고 해서 그저 나도 한다는 식은 안됩니다.

예컨대 유통업이 그래요. 요즘 유통업진출이 유행이지만 이건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하는 사업이지요.

중견그룹들이 대기업그룹을 상대로 하기엔 조금 벅찬 업종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을 냉철히 인정하고 절대 무리하지 않는게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요즘 보통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십니까.

<>나회장=아침에 8시 30분쯤 출근해서 오전엔 주로 밀린 결제를 합니다.
오후엔 밖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요.

계열사 수가 늘어나면서 가능하면 웬만한 것들은 각사 사장들에게 일임하고
있습니다.

제가 모두 챙길 수도 없고 또 그게 바람직하다고 보지도 않아서지요.
계열사 인사도 임원급 이상만 챙기지 나머지는 모두 사장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최근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직을 맡으셨지요. 이젠 그룹경영말고도 사회
활동등에도 본격 참여하시기로 하신 겁니까.

<>나회장=기업을 한다는게 무조건 돈만 버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도 봉사하고 문화 예능쪽에도 기여하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은 것도 이런 맥락이지요.

-워낙 바쁘셔서 가정에 소호하실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나회장=가족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갖으려고 하지요.

요즘엔 아이들과 가끔 노래방에도 갑니다. 원래 18번은 "목포의 눈물"
인데, 아이들이 요즘 유행하는 노래 좀 부르라고 해서 "립스틱 짙게
바르고"와 "남행열차"를 연습하고 있는데 잘 안되더군요.

<정리=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