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발전과 문화, 그리고 이론-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을 중심으로 ]]

김일곤 <부산대 교수.경제학>

<> 서언

한 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룩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차대전이후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도 지구상에는 백수십개의
개발도상국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후에 후진국으로 부터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아직 없다.

이와같이 경제발전이 쉽지 않다는 것은 거기에 문화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은 경제발전과 문화의 관계,그리고 윤리의 문제를 생각해 보려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적 성취도를 보이고 있는 곳은
동아시아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발전과 문화를 주로 생각한다.

여기서 유교문화라는 것은 종교로서의 유교나 학문으로서의 유학이
아닌,전통적인 가족집단주의의 생활능력을 의미한다.

1. 경제발전론의 한계

50년대이후 경제발전의 이론 또는 경제발전론이라는 학문이 붐을
이루었다.

이것은 식민지해방으로 생긴 개발도상국들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경제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경제발전의 이론과 현실의 경제발전은 왜 유효하게 결부되지 않았는가.

첫째로 경제학 지상주의이다.

경제발전에 관한 모든 문제는 경제의 이론,법칙성,분석방법만에
의해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구미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그 이론들이
제대로 적용될수 없었던 것이다.

둘째로 문화적 차이이다.

사회마다 그 나름대로의 사상과 역사에 의해서 형성된 집단적인
생활능력이 있다.

인간관계의 질서,가치관,도덕이나 규율이 그것이다.

구미사회는 개인주의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을 사회구성의
기본단위로 본다.

따라서 개인주의가 아닌 문화를 지닌 사회에서는 구미의 시스템이 그대로
정착되지는 않았다.

셋째로 역사의 중요성이다.

역사라는 것은 짙은 기축문화를 형성한다.

역사의식이라는 것은 일종의 반성의식이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언제나 반성을 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강한 역사의식을 가진 나라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다.

경제발전도 역사형성의 주체로서의 문화수준이 높은 나라 사람들이
실현하는 것이다.

한편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이 공업화의 파급과정에서의 후발성이익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동아시아 제국이 보다 효율이 좋고 원가가 싼 기술을 도입하였으므로
후발성이익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왜 그러한 발전이 동아시아에서만 일어 났는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고 후발성 이익을 거두는 능력,도입된
자본과 기술을 경제발전과 결부시키는 재능은 일부의 국가에서만
찾아 볼수 있다.

노동자의 기능,경영자의 자질,관료의 행정력등은 그 나라의 집단문화
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

현재로서는 동아시아의 유교문화권과 그 전파효과를 얻은 나라에서만
그 능력이 발휘되고 있다.

그러므로 후발성이익을 자기것으로 만드는 능력이나 조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2. 경제발전에 있어서의 문화

경제발전은 경제의 논리에 더하여 사상이나 능력,가치관,집단규율이
어떠한가 하는 문화적인 요인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볼수 있다.

경제의 발전에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편성과 개별성의 측면이 있다.

구미의 경제모델은 시스템으로서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즉 사유 영리 자유의 보장,시장경제의 원리를 움직이게 하는 합리성과
효율성의 철저한 추구 없이는 어떤 나라도 경제발전에 성공할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화하고 행동화하는 것은 인간이며 그 집단이다.

이것은 곧 지역과 역사에 의해서 규정되는 문화이고 역사전개의 개별성의
측면이다.

그러므로 경제발전은 보편성이 있는 시스템이나 경제의 논리와 개별성을
갖는 문화가 융화되고 일체화될때 실현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은 오랜 마찰과 갈등을 거친 끝에 자본주의의
시스템과 경제의 논리를 전통적인 문화로써 수용하고 흡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즉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과 논리를 받아들이면서 유교문화의
상조 공생을 경제의 질서에서 살리고 있기 때문에 발전을 궤도에 올릴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편성 있는 시스템은 수입할수 있으나 개별성 있는 문화는 그 사회
고유의 것이다.

문화수준이 높고 적응성을 갖지 않는 경우 경제발전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제발전을 궁극적으로 규제하는 요인은 그 사회의 집단적인
생활능력인 문화라 할수 있는 것이다.

3. 자본주의 사회와 경제윤리

2차대전 이후에 한동안은 이른바 기독교문화권에서만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성공한다는 신화가 있었다.

그 이유는 막스 웨버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에서 찾아졌다.

구미의 경제발전을 가져왔다고 말해지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이윤 추구의 용인 2직업의 신성시 3근면하게 일하고 검약하는 생활태도
등이다.

이것은 합리적이며 대중적인 세속적 금욕윤리이지만 모두가 신의 의지에
따르는 신념이다.

이 신념이 곧 자본주의의 정신이 되고 또한 경제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윤리는 반드시 구미사회
고유의 윤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사회가 경제발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지지
않으면 안되는 보편성이 있는 경제윤리라 할수 있다.

동아시아의 경우에 있어서도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시장경제의
원리가 도입되어 영리의 자율적인 추구,직업윤리,근면과 절약하는 생활태도
등 전통문화와 관련되는 윤리가 발휘되었다고 할수 있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어느 민족이나 국가에도 반드시 흥망성쇠가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그런데 융성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곳 사람들의 윤리가 건전하고
정신이 왕성하지만 반대로 쇠망할 때는 예외없이 윤리가 쇠약해지고
정신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자본주의 경제도 그것이 성숙된 사회에서는 그 윤리적인 기초가
상실되고 정신의 방황이 일어나며 물질만능주의나 배금주의가 횡행하는
경우를 볼수 있다.

청교도의 윤리로써 경제발전을 이룬 일부 구미제국에서도 오늘날 이러한
현상을 볼수가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신에 대한 신앙심이 저하되고 윤리가 작용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4. 전통문화를 살리는 경제발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유교문화권도 오늘날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경제발전이 궤도에 오르고 소득과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구미의
외래문화가 침투하여 전통문화가 무너지려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세대간의 갈등보다는 이문화 사이의 갈등이다.

민족 고유의 문화를 상실하면 민족의 고유성,민족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경제발전의 문제는 보편적인 시스템과 고유한 문화사이의
균형문제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경제발전을 하더라도 구미와 꼭 같은 사회로 되고 그 문화와
동화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오늘날 일부 선진국의 사회상을 볼때 질서가 어지러워지고 그로
인하여 경제력도 저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를 살리면서 경제를 발전시켜
서로 돕고 함께 일하며 보람있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구미문화에는 신에 의한 외부규제의 윤리가 있다.

거기에서는 오늘날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심이 저하하였기 때문에
사회가 어지러워졌다고 볼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편으로 각자 자기 종교에 대한 신앙심을 잃지 않도록
하면서 동시에 전통문화의 상호규제와 자기규제의 윤리를 살려야 할
것이다.

즉 부모 형제 친구 상사등에 의한 인간적인 행동규범의 상호규제와
끊임없는 반성으로 덕을 쌓아 가는 자기규제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원래 덕본재말의 사상이 있었다.

덕이 근본이고 재는 말단이라는 것이다.

전근대에 있어서는 이러한 사상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체제가 경직화되고
경제는 정체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재만을 중요시하는 배금주의가 만연되고
있다.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누구나가 재를 얻으려 하고 욕심을 채우려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덕이라는 것은 강조하고 교육하지 않는한 달성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는 발전시키되 금욕윤리,즉 올바른 정신문화등
덕을 존중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 결언

경제발전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경제적 근대화를 성급하게 추구하는 나머지 전통적인 사상이나
윤리교육을 소홀히 하였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고 난후에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그로 인해
경제까지 잘 안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전통적인 상조
공생하는 민족공동체의 문화를 살리는 가운데 경제발전의 미래를
설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경제발전과 정신문화가 융합되는 새로운 경제 사회 문화를 체계화하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