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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크칼럼] 1995년 10월 러시아 .. 유화선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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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국 모스크바의 10월은 영락없는 초겨울이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가로수들은 외투 깃을 잔뜩 추켜 올린채 종종
    걸음하는 "마스코비츠"(모스크바시민)들과 어우러져 스산한 풍경을 빚어낸다.

    크렘린 인근의 골목길에선 추레한 입성의 행상들이 뭔가를 손에 들고
    지나는 행인들을 붙잡는다.

    곱은 손을 펴가며 이들이 내 보이는 건 담배 1~2갑, 아니면 생선
    서너마리다.

    그러나 크렘린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페트로프스키 파사쥐" 백화점은
    전혀 별천지다.

    온갖 장신구로 치장한 귀부인들이 매장을 가득 메운채 한벌에 5,000달러
    (400만원)가 넘는 밍크 코트를 한푼도 깎지 않고 거침없이 쇼핑해댄다.

    입장료만 50달러가 넘는다는 스타니슬라프 돌스 같은 호화판 레스토랑들도
    외식을 즐기는 가족들로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전환 경제( Transition Economy )의 최전선"을 찾은 이방인에게 비친
    러시아는 야누스의 얼굴이다.

    근 한세기에 걸쳤던 공산주의 실험이 비우고 간 자리를 천민 자본주의가
    헤집고 들어선 모습이 아닌가 싶다.

    마치 18세기말 산업혁명 초기의 영국에서 신흥 자본가들이 "졸부"를
    주체하지 못해 흥청망청하는 이면에서 근로자들은 극빈의 수렁을 헤맸던
    것처럼.

    이때 영국의 산업혁명이 "맨체스터 자본주의"로 위기를 맞았다면 오늘의
    러시아 전환경제는 "마피아 자본주의병"을 앓고 있다고나 할까.

    러시아 전환경제가 이렇게 불안하다는 것은 이 나라에 몇년전부터 찾아온
    "월동기 징크스"에서도 뒷받침된다.

    사실 러시아는 3년전부터 해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즈음만 되면
    나라사정이 어수선해지는 "되돌림병"을 치러왔다.

    예컨대 92년 이맘때는 급진 개혁노선을 추구했던 가이다르총리가
    정적들에 의해 중도하차됐다.

    이듬해 10월엔 구최고회의 의사당이 보수파 쿠데타에 의해 강점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작년에도 이 무렵엔 소수민족 문제를 절정에 올려놓은 체첸사태가 불거져
    나왔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17년10월의 "볼셰비키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이 월동기 징크스가 올해도 예외없이 재현될것 같다는 게 이곳 식자들의
    귀띔이다.

    연말로 예정돼있는 하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헤쳐모여"가 일어나는등
    좀 안정되는가 싶던 정국이 동요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개혁 역시 최대 난제의 하나로 꼽히는 금융산업 재편작업이 혼미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전환경제를 이같이 불안한 무대에서 끌어내리지 않는 한
    옐친정권도 앞날을 장담키 어려워 보인다.

    물론 한나라의 체제개혁이 진통없이 완성되기는 쉽지 않다.

    또 현재의 러시아는 어디까지나 "전환 경제"의 진행형이지 완성형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

    더구나 이방인에겐. 그러나 러시아가 겪고 있는 요즘의 "전환 과정"이
    덧셈아닌 뺄셈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느낌은 지울수가 없다.

    그런 느낌은 왠지 강한 의구심으로 발전한다.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정당과 단체들이 신흥기업집단 군산복합체
    국영기업등과 이러저러한 이해관계에 얽히고 설켜 있다는 말을 듣고 보면
    특히 그렇다.

    결국 러시아의 전환경제는 중구난방식 구호만 난무할뿐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연말 하원선거도 승자는 하나도 없이 생채기만을
    남길게 뻔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어쩌면 러시아 전환경제의 시행착오는 고르바초프의 도중하차때 이미
    잉태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를 기치로 내걸었던
    고르바초프는 이 양대 명제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우스코레니에(가속화)"를
    택했다.

    그러나 부패 척결과 가격구조 개편등 일련의 민감한 이슈들을 "가속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노멘클라투라(귀족)"로 불리는 기득권 계층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곤경에 빠진 고르바초프가 택한 대안은 보수와 혁신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우물쭈물 근대화( Hesitant Modernization )"였다.

    이렇게 해서 고르바초프는 국민적 인기가 떨어지고, 러시아경제는 불안한
    전환무대에 올려져 매년 월동기 징크스를 낳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전보다 밝아졌다지만 모스크바의 거리는 낮에도 여전히 우중충하다.

    그 거리를 거닐며 상념에 젖는다.

    "중단없는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김영삼정부의 "한국판
    전환경제"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김영삼대통령의 국민적 인기가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은 초겨울
    북국을 찾은 이방인의 감상때문만일까.

    < 모스크바에서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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