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급변한다는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그 변화를 수용할 제도의
수정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흔히 있다.

특히 진입장벽이 높은 영역일수록 그 장벽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미칠
움직임에 대해 반발이 거세다.

그 대표적 예의 하나가 법조인의 양성 내지 학제를 둘러싼 논쟁이 아닌가
한다.

몇달동안에 걸쳐 지루한 논쟁이 벌어져왔지만 논의의 주류는 사법고시
실시와 그 합격자의 사법대학원 이수라는 현행 판.검.변호사 자격
부여제도의 변경에 대한 찬반으로 집약할수 있다.

행정부는 세계화추진위의 건의형식의 여론을 모아가며 현행 제도를
미국의 "로스쿨"제도 쪽으로 끌고가려 하고 있고 반면 대법원으로
대표되는 범법조계는 뭐라 해도 사법시험 중심의 뼈대를 포기치
않으려 집요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양측이 의견접근을 본 부분도 있다.

수요에 크게 못미치는 변호사의 배출을 늘리는데엔 법조측의 양보로
합의점을 찾았다.

사법대학원을 대체할 전문 법과대학원 신설문제도 운영주체의 견해차
외에 설립원칙에는 의견이 퍽 접근했다고 들린다.

다만 5일 이홍구총리의 자극성 발언으로 어떤 새 변수가 돌출할지 아직
확언할수 없다.

그가 자신의 발언진의를 6일에 해명했다고 하나 "대법원에 사법개혁의지가
없다"는 대목에 사과를 했을뿐 "전문 법조인 양성이라는 정부의 세계화
방침에는 변화가 없음"을 확언,법조학제의 수술진통은 지속될 전망이다.

전담의 법조학제위가 본격 가동된다고 하니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행정.사법부는 물론 재야 법조계나 일반의 의견까지 광범하게 수렴하기
바란다.

이 기회에 강조할 점은 비록 세계화지향의 개혁이라 해도 외국의
사법제라고 해서 무결함이라는 오류는 범하지 않는 일이다.

비근하게 법학대학원이라면 될 일을 계속 로스쿨이란 외국용어에
집착하는 나머지 필요이상의 반발을 부를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현 사법시험제의 존치여부와 법조인교육의 내실화
방향이다.

이미 범하고 있는 큰 과오는 사시제도가 행정고시와 같은 뿌리임에도
그 철폐문제는 사시에 국한하는데서 오는 모순점이다.

어느 면에선 법조인의 전문성이 더 높게 요구되는데 행시존속에 사시
폐지는 정당성의 결여를 부른다.

따라서 만일 크게 보아 다기화.민주화 사회에서 구군주제의 잔영인
사법.행정 고시제도를 전문교육제로 전환함이 시의에 맞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옳은 판단이다.

그러나 행시를 행정대학원을 통한 행정간부 양성제로 전환하는 방안이
동시 추진돼야 비로소 아귀가 맞는다.

신설 법학대학원은 또한 사시합격자의 연수라는 제한적 기능을 벗어나
법과대학에서 이론을 전공한 법조인 지망자에게 법조실무를 교육하여
변호사 면허를 주는 방향이 타당하다고 본다.

내용면에선 로스쿨이나 크게 다를바 없다.

대법원이 사법개혁 의지 없다는 총리의 지적에 대로함을 보고 독립성
피침의 참담한 심정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권위주의를 가장 온존하는
관청이 법조라는 민성을 경청해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