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명문법대 졸업 .. 메넴 대통령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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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시리아계 이민 2세인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대통령은 올해
65세로 아르헨티나 북서부 리오하주 출신이다.
포도주 양조장을 경영하는 부모 밑에서 초중등학교를 마친 메넴은
아르헨티나 명문 국립대인 코르도바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회에 진출한뒤에는 변호사 생활을 했으며 56년 페론당에 입당, 청년
당원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메넴은 페론당 청년지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73년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정치적
시련을 겪게 된다.
페론의 세번째 부인 이사벨 페론이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한지
불과 1년만에 군사쿠테타로 쫓겨난뒤 메넴은 정치범으로 몰려 5년동안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는 수감중에도 군정에 맞서 줄기차게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군정은 영국과의 포클랜드전쟁 패배를 계기로 무너졌다.
그는 83년 라울 알폰신의 민선정부가 들어서자 정치활동을 재개해 라
리오하주 주지사로 선출됐다.
알폰신 대통령은 군사정권이 낳은 각종 후유증 처리와 국내경제의 피폐로
위기에 몰려 임기를 6개월 남겨두고 중도하차했다.
이에 주지사 경력이 전부인 메넴은 89년 대권에 도전했다.
그 결과 과반수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얻으면서 임기 6년의 제2대 민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메넴정부 초기만 하더라도 국내 경제는 연간 4천%를 웃도는 초인플레와
외채누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대학후배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을 전공한 도밍고 카발로를 경제장관으로 앉히면서 신경제정책을 실시,
3년만에 아르헨티나 경제를 안정시키고 성장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그는 경제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사사건건 반대하는 의회에 맞서 무려
3백60차례나 긴급명령을 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89년 5천%에 근접했던 물가를 지난해 3.9%로 끌어내리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같은 기적은 국민들이 "고통분담"에 동참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메넴은 "문민독재"라는 국민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말 제2야당
인 급진시민연합과 "올리보스 밀약"을 끌어내면서 대통령 연임 허용 및
자신의 재출마, 대통령 임기단축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을 마무리지었다.
그뒤 지난 5월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예상외로 과반수를 넘는 표를 얻어
임기 4년의 대통령에 재선됐다.
국민들로부터 경제정책의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메넴은 같은 시리아계인 부인 술레마 요마 여사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으나 지난 3월 헬기 사고로 외아들을 잃었다.
별거중인 부인과는 최근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동생인 에두아르도 메넴 역시 정계에 입문, 현재 상원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9일자).
65세로 아르헨티나 북서부 리오하주 출신이다.
포도주 양조장을 경영하는 부모 밑에서 초중등학교를 마친 메넴은
아르헨티나 명문 국립대인 코르도바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회에 진출한뒤에는 변호사 생활을 했으며 56년 페론당에 입당, 청년
당원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메넴은 페론당 청년지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73년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정치적
시련을 겪게 된다.
페론의 세번째 부인 이사벨 페론이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한지
불과 1년만에 군사쿠테타로 쫓겨난뒤 메넴은 정치범으로 몰려 5년동안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는 수감중에도 군정에 맞서 줄기차게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군정은 영국과의 포클랜드전쟁 패배를 계기로 무너졌다.
그는 83년 라울 알폰신의 민선정부가 들어서자 정치활동을 재개해 라
리오하주 주지사로 선출됐다.
알폰신 대통령은 군사정권이 낳은 각종 후유증 처리와 국내경제의 피폐로
위기에 몰려 임기를 6개월 남겨두고 중도하차했다.
이에 주지사 경력이 전부인 메넴은 89년 대권에 도전했다.
그 결과 과반수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얻으면서 임기 6년의 제2대 민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메넴정부 초기만 하더라도 국내 경제는 연간 4천%를 웃도는 초인플레와
외채누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대학후배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을 전공한 도밍고 카발로를 경제장관으로 앉히면서 신경제정책을 실시,
3년만에 아르헨티나 경제를 안정시키고 성장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그는 경제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사사건건 반대하는 의회에 맞서 무려
3백60차례나 긴급명령을 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89년 5천%에 근접했던 물가를 지난해 3.9%로 끌어내리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같은 기적은 국민들이 "고통분담"에 동참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메넴은 "문민독재"라는 국민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말 제2야당
인 급진시민연합과 "올리보스 밀약"을 끌어내면서 대통령 연임 허용 및
자신의 재출마, 대통령 임기단축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을 마무리지었다.
그뒤 지난 5월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예상외로 과반수를 넘는 표를 얻어
임기 4년의 대통령에 재선됐다.
국민들로부터 경제정책의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메넴은 같은 시리아계인 부인 술레마 요마 여사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으나 지난 3월 헬기 사고로 외아들을 잃었다.
별거중인 부인과는 최근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동생인 에두아르도 메넴 역시 정계에 입문, 현재 상원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