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윤 <한국외국어대 교수. 무역학>

일본 엔화의 가치가 원화에 비해 상승했을때 우리나라의 수출은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 엔화가치가 다시 급속히 하락하기 시작하자 수출감소를 우려
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자국통화 가치가 다른 경쟁국 통화가치와 비교해 하락하게 되면
자국의 달러 표시 수출품가격은 경쟁국의 수출품가격보다 하락, 자국의
수출을 증대시키게 된다.

자국통화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수출이 늘어나는 관계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자국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상품의 달러표시 가격이 떨어져 경쟁국
통화가치에 비해 하락한 정도만큼 자국의 수출을 더욱 증가시킨다.

뿐만아니라 이전에는 수출이 되지않던 제품들까지 달러표시가격 하락으로
수출되기 시작하는등 전체적으로도 수출이 증가하게 되는것이다.

구체적으로 1달러=700원이던 원화가치가 10% 하락해 1달러=770원이 됐다면
원화로 표시한 상품가격은 그대로 있는데 달러로 표시한 가격은 하락,
가격경쟁력이 높아짐으로써 수출이 증대되는 것이다.

또 제조업에 있어서 수출증가는 시설확장을 가져온다.

시설확장은 자동차산업 석유화학산업등 장치산업의 경우 생산시설 확대와
더불어 제품단위당 가격을 크게 떨어뜨리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들 업종을 중심으로 가격경쟁력이 더욱 높아져 때로는 자국통화의
가치하락분 이상으로 수출이 증가하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선진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이때 정부의 보호하에 자국시장을 개척.확대시키는 단계까지는 비교적
쉽게 발전할수 있다.

그러나 수출시장에 진출할 정도로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때문에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통화 가치를 하락시키는 방법을 통해
이 난문을 통과하고 있다.

자국통화가치의 하락은 당연히 수입상품의 가격을 인상시키게 되므로
수입억제효과를 발생시킨다.

뿐만아니라 종전까지 국내생산을 하고 싶어도 수입품과의 가격경쟁에서
이길 수 없어 국내생산을 포기했던 적지않은 산업에 걸쳐 국내대체화를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얼마전 통상산업부가 발표한 자본재산업 육성정책은 말하자면 엔고에
따른 일본자본재의 수입가격상승을 호기로 활용해 가격경쟁이 가능한 품목을
중심으로 해당 품목의 국내생산을 적극 추진해 보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국통화가치 하락에따른 수출증대및 생산효과는 본질적으로
일시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국통화의 가치하락에 따른 수입품 가격의 상승은 그 수입품이
자본재이거나 원자재의 경우 이를 투입해서 만드는 제품의 가격을 상승
시키는 등 수입국의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초래하게 된다.

물가상승은 당연히 근로자의 실질소득을 하락시키게 되므로 근로자들은
실질소득이 하락한 만큼을 회복하기 위해 임금인상 투쟁을 전개하게된다.

수입상품및 수입관련상품의 가격상승으로 촉발된 물가상승은 토지 건물등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고 이에따라 주택임대료등을 상승시키게 되므로
근로자의 임금인상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수출증대를 가져온 것은 임금 지대등 생산요소의 달러표시 가격하락의
효과이다.

따라서 이 효과는 필연적으로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제자리를 찾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국통화 가치하락에 따른 수출증가,수입억제에 따른 무역수지흑자의
발생과 이에 따른 통화량 증발은 물가상승을 가속화시킴으로써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유리하고 근로자에게는 불리한 왜곡된 분배구조를 조성시키기
쉽다.

나아가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쉽게 부와 소득을 증가시킨 계층이 향략적
소비수요를 불러 일으킴으로써 이런 수요에 부응하는 비생산적 산업을
양산시키는 경향도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자국통화의 가치하락에 따른 긍정적 효과인 수출증대및 수입품의
국내생산유발효과를 극대화시키고, 부정적 효과인 인플레이션의 가속화및
이에 따른 분배구조의 왜곡과 비생산적 부문의 확산을 극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치밀한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

그 대응방향으로 수출증대및 국제수지흑자에 따른 외화유입 증가분을
통화량증가로 이어지지 않게 하고 기업들로 하여금 시설투자및 기술.
기능인력의 양성등 생산능률의 향상을 가져오게 하는 부문에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원의 비생산적 활용을 막는 것은 물론 기업이 근로자의
실질임금 회복을 위한 임금인상 요구를 들어 주더라도 고성능 기계.설비및
근로자의 기술.기능향상으로 그 이상의 노동생산성 증대를 실현시킴으로써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경쟁력 강화를 달성할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