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선물시장에서 일하는 것은 나날이 서바이블 게임(생존게임)입니다"

서중원씨(37세)-. 미국 시카고 선물시장의 대형 선물중개회사인
사쿠라델셔사의 이사. 월스트리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은 많지만
시카고 선물시장, 즉 "라살 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직 극소수다.

그는 몇안되는 이들 선구자중에서도 선두주자다.

하루종일 손가락질을 해대고 고함을 질러대야하는 시장대리인으로서
선물시장에 발을 디딘 사람도 그가 처음이다.

미지의 선물세계로 뛰어든 최초의 한국인이 됐고 이제는 그의 안내를
따라 한국의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선물세계로 들어서고 있다.

그의 아침 기상 시각은 새벽 4시반.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6시를 갖 넘기게 된다.

아시아 유럽시장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정확히
7시20분이면 주요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의 투자전략을 논의한다.

스태프들이 출근하면 그날의 매매를 지시하고 시황전망에 대해 다시
토론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해 하루종일 부침하는 시세와 씨름하다보면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도 어두워져서야 배고픈 것을 느낀다"

그래서 하루 14시간 내지 15시간을 일하는 것은 그에게 이미 일상적인
일이 됐다.

그러나 처음 선물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이정도 고생은
고생도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가 처음 선물회사에(겔버 그룹)취직해 거래원으로 시장에 두입됐을땐
하루종일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로 목이 터져라 매매를 해야했고
오후가 돼 끼니를 때우러 햄버거집에 들어가면 먹지도 못하고 한시간이상
앉아만 있다 집에 돌아간 적 있었다.

후선으로 물러선 이후에는 실적이 없어 수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막노동자이상의 수모를 겪은 적도 한두번도 아니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다니다가 시카고대 학부 3년과정으로 옮겨갔다.

대학원은 영국 캠브리지에서 마쳤고 다시 시카고대학으로 돌아와 컴퓨터
사이언스분야에서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국내에서라면 어느 기업이든 모셔갈 법한 학력의 그였다.

취직할 당시 1백50여개 회사가 눈에 들어왔으나 영주권이 없는 그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첫 직장인 선물회사 겔버사와 맺었던 계약이 "실적이 없으면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것.

당장의 실적이 있을 리 만무했고 배고픈 생활도 불보듯 뻔한 것이었다.

업무상 에러가 나면 물어내든가 쫓겨나든가 택일해야했다.

"전화가 걸려오면 겁부터 났습니다. 묻고 물으면서, 사람들을 귀찮게
하면서 미친 척하고 배웠습니다. 원색적인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살아
남아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이름이 알려지면서 한국기업은 물론 미국기업으로부터도
스카우트 제의들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모두 사절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단지 여기서 끝장을 내야한다는 생각밖에는"

그가 현재 직장으로 옮겨온 것은 94년. 지난65년에 설립된 델셔
인베스트먼트 컴퍼니를 사쿠라은행이 60%를 출자하고 멜라메드회장이
40%를 지분참여해 93년 설립된 사쿠라델셔가 아시아권 세일즈를
강화하면서 미국 선물시장의 거물인 레오 멜라메드 회장에 스카우트된
것.

최근에도 한국의 모금융기관으로부터 선물회사 사장자리를 제의받았지만
이역시 사절했다.

설익은 실력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풍토도 싫었지만 "미국에서 싸워
이기겠다는"는 야심이 그를 붇들어매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