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경의 발상이 있은지 다섯번째 이레의 나흘되는 날, 희봉은 다음날의
큰 행사를 위해 여느 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서 시녀 평아에게 지시
하였다.

"내일 새벽 4시에 나를 깨우도록 하여라.얼굴화장과 옷단장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

다음날 희봉은 정확하게 새벽 4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서 최대한
아름답게 화장을 하고 문상복이긴 하지만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었다.

그렇게 성장한 모습으로 손을 또 한번 씻고 쌀죽과 다과로 간단히
아침을 먹은후 양치질을 하고는 6시반에 녕국부로 향했다.

희봉이 타고 가는 수레 앞에는 "영국국"라는 세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진 명각등(뿔로 얇게 깎아 만든 등)한 쌍이 걸려 있어 그런대로
길을 밝혀주었다.

영국부에 이르니 대문 위에 큰 문등(문등)이 켜져 있고 양옆으로
똑같은 모양의 등불들이 줄을 이어 걸려 있어 대낮같이 훤하게 밝았다.

그 등불 밑으로 흰 상복을 입은 하인들이 두 줄로 죽 늘어서 있었다.

수레가 녕국부 대문 앞에 멈춰서자 영국부에서 따라왔던 하인 아이들이
물러가고 시녀들이 수레에 친 발을 걷어올렸다.

희봉이 시녀 평아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에서 내렸다.

등불을 손에 든 두 시녀의 호위를 받으며 희봉이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동안 내왕의 아내를 비롯한 녕국부 시녀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희봉은 진가경의 유해가 안치된 회방원으로 향하였다.

거기 등선각에 놓여 있는 진가경의 관을 보자 희봉의 눈에서는 줄
끊어진 구슬인 양 눈물방울들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회방원 뜰에는 하인 아이들이 두 팔을 드리우고 늘어선 채 갖가지
모양으로 만들어진 종이 물건들을 들고 희봉의 명령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희봉의 지시가 떨어졌다.

"차를 올리고 소지하라!"

그와 동시에 징이 한번 올리면서 그것을 시작으로 주악이 울려퍼졌다.

하인 아이들은 손에 든 종이물건들에 불을 붙여 태웠다.

말이 타고 수레가 타고 배가 타고 집이 활활 탔다.

그 지찰들은 바람을 타고 이리 저리 흔들리며 오르다가 홀연히 재로
흩어졌다.

진가경이 저승으로 갈때 그 모든 것들을 함께 가져가라는 염원이
담긴 소지의식이었다.

하인 하나가 높은 의자를 가져다주자 희봉은 거기에 앉아 목을 놓고
울었다.

"어이구, 어이구"

희봉이 대성통곡하는 소리를 들은 남녀노소들은 누구나 할것 없이
집안의 어디서든 함께 울기 시작했다.

일제히 터져나온 그 곡소리가 온 거리를 뒤흔드는 듯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