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은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터를 잡은 동네였다.

인근에 방림방적을 비롯, 경방 진로 크라운 동양맥주등 기업들이 많아
취직이 쉽고 변두리라 집값도 저렴해서였다.

내가 가장 아끼는 모임은 바로 당산동 친구들의 모임이다.

부모님들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이북등 팔도 각지에서 이사오셨다.

우리들은 한동네에서 자랐고 특히 학창시절 당산동 1가에 있는 당일교회에
같이 다녀 매우 친하게 지냈다.

초대받지 않아도 막무가내로 쳐들어가 라면을 끓여 먹고 신앙과 인생을
토론하면서 성장했다.

세월이 흘러 직장때문에 뿔뿔이 흩어졌지만 10년전부터 한두사람씩 다시
만나기 시작해 지금은 15명의 회원이 매달 모임을 갖고 있다.

모두 정겨운 친구들이다.

서로가 성장과정과 집안내력 장단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 숨길것도 없다.

모임이름도 당산동과 당일교회를 따서 당우회로 정했다.

매월 한번씩 돌아가면서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하면서 사는 얘기를 하고
여름에는 인근 시골로 함께 휴가를 가기도 한다.

지난해엔 파주의 시골집을 빌려 일곱가족이 가족동반으로 휴가를 떠났다.

아름드리 느티나무아래서 매미소리들으며 수박을 깨먹고 아이들과 잠자리
와 메뚜기를 잡으며 시골정취를 만끽했다.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속에서 토론도 하고 옛날얘기로 밤을 지새기도 했다.

몇해전 양평콘도로 휴가를 갔을땐 돼지고기를 잘못먹어 함께 고생하기도
했고 설악산콘도로 놀러갔을땐 승용차한대에 무려 15명이 탑승해 이동하는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만능스포츠맨인 능곡 늘찬양교회의 김상식목사와 구수한 입담의 인천소재
개척교회 박상섭목사 섬유수출에 밤낮이 없는 데니어패럴의 김병원부장
개그맨뺨치는 영원한 총무 박태형우리기업사장이 회원이다.

동갑내기이면서도 박학다식한 지식으로 언제나 형님처럼 행동하는
내외반도체 전병래부장 성가대지휘를 맡고 있는 박상윤대우자동차차장
액세서리무역업체를 경영하는 이현범사장 회장을 맡고 있는 이석재호남정유
과장도 좋은 친구들이다.

장충중학교에서 호랑이로 유명한 김정훈선생과 멋쟁이 임정재부장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최응철군과 건설업체 현장소장인 정희원군도 모임에
앞장선다.

우리들에게 빼놓을수 없는 추억은 교회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다.

육중한 체구와 무서운 눈초리의 김인갑부장님은 수련회 새벽기도때 조는
학생을 기가막히게 찾아낸뒤 사정없이 쥐어박아 머리에 혹을 달지 않은
학생이 드물 정도였다.

또 중고등부때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눈물로 기도해주시던
유순덕장로님 황금순 음갑숙선생님등도 잊지 못할 은사들이다.

어릴적 둑너머인 목동에서 메뚜기와 개구리를 잡아와 구워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파트로 빽빽히 들어서 그옛날의 논과 밭 그리고 수문을 찾기도
어려워졌다.

쪽박산과 칼산도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들의 어릴적 추억은 날이 갈수록 더욱 새롭고 우정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