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같이 큰 집의 대들보에 목을 매단 미인의 그림.

그 그림을 설명하는 글에는 "한번 정을 주고 받기만 하면 반드시
음란해지네(정기상봉필주음)"라는 구절이 있지 않았던가.

보옥으로서는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잘 알지 못하였지만, 사실 그런
음란의 결과로 진가경이 일찍 죽은 셈이었다.

비록 그 그림의 글처럼 목을 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진가경의 몸종까지 기둥에 머리를 찧고 죽고.

이때 보주라는 시녀 아이가 흐느끼며 가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왜 이러느냐?"

가진은 보주도 진가경을 따라 죽을 작정을 하였는가 싶어 염려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주인 마님은 자식도 하나 없이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상주 노릇을 할 자식이 없는데 제가 양딸이 되어 문상을 받을
때나 발인을 할 때 상주 노릇을 하겠습니다.

저의 뜻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가진은 보주를 기특하게 여겨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고 아랫사람들에게
명하여 보주를 지금부터 아가씨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한 순간에 보주는 시녀에서 가씨 가문의 양딸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녀를 시샘하지 않았다.

보주는 시집가기 전의 딸이 지켜야 할 상례를 따라 상복을 입고 영전에
꿇어앉아 애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아래 위 구별없이 진가경을 사모하는 마음이 절절하였으므로
장례준비를 위해 각자 맡은바 일들을 질서정연하게 착착 진행시켜
나갔다.

그런데 가진으로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들 가용이 국자감 학생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신분을 명정에 쓰기도 뭐하고 발인할 때 호화롭게
차리기도 멋쩍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손을 써서 가용에게 제법 그럴듯한 벼슬자리 하나 얻도록
할 수는 없을까.

이런 궁리를 하고 있는데 마침 대명궁 궁내 사무를 관장하는 환관장
대권이 부의금을 먼저 보낸후,양산이 따르는 큰 가마를 타고 징을
울리며 조문을 왔다.

가진으로서는 가용의 벼슬자리를 위하여 좋은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가진은 황급히 마중을 나와 대권을 두봉헌으로 모시고 차를 올렸다.

대권이 가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자 가진은 재빨리 아들 가용의
문제를 꺼내었다.

"제 아들이 아내를 잃고 큰 슬픔에 빠져 있는데 말입니다.

근데 제 아들이 국자감 학생에 불과하단 말씀입니다.

제 아들이 조금만 벼슬이 높아도 제가 걱정을 하지 않겠는데."

대권이 비씩 웃으며 대꾸했다.

"며느리 장례때 체면을 생각해서 그러는군요"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