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진 <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지난 7월11일 클린턴 미대통령은 미국과 베트남이 정식 수교관계에 들어감
을 발표했다.

1973년1월 미-베트남간 파리평화협정체결을 바탕으로 미군은 월남전에서
철수했고 그후 75년4월30일 사이공(지금은 호치민시)이 함락됨으로써 월남은
패망하였으며 공산화통일이 실현되었다.

미국과 베트남은 월남전 종식후 20년간의 미수교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공식적인 국교 정상화를 이룩하게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베트남 수교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70년대말 미국의 카터 행정부는 베트남과의 수교문제를 검토했다.

그러나 당시 베트남은 캄보디아 침공정책과 이로 인한 중국의 침략에 대비
한 구소련과의 군사동맹체결로 미국과 수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반면 미국은 대소봉쇄를 겨냥한 친중국 정책에로의 선회로 미-베트남 수교
문제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후 미-베트남 수교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이
캄보디아 침공정책을 포기, ''도이모이''(베트남판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가시화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다.

미 레이건행정부 후기에 베트남은 이미 캄보디아에서 병력을 철수했고
당시 미-베트남간 최대 외교현안은 월남전쟁기간중 실종된 미군병사및 포로
에 대한 확인문제였다.

공화당의 부시행정부 집권기간중에도 미국은 이같은 외교현안의 해결을
위해 수차례에 걸쳐 사절단을 베트남에 파견했고 베트남에서도 이에 협조
함으로써 양국간 수교문제가 상당히 진척되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월남전참전을 거부한 클린턴 대통령의 당선으로 오히려
미-베트남 수교가 지연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대베트남수교를 위한 신중한 점진적 조치를 강구했다.

국제기구의 베트남에 대한 차관제공용인, 미국기업의 베트남 개발참여 등
으로 대베트남 제재조치를 완화했다.

지난해 2월 미국은 30년에 걸친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전히 해제
했으며 금년 1월 양국은 상대방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 국교 정상화를
향한 수순을 밟았다.

지난 5월에 베트남정부가 2,000여명으로 추산되는 미군 실종자및 포로문제
와 관련, 미국에 방대한 조사자료를 제공하는 성의를 보인 것이 수교를
앞당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월남전 종식후 이와같이 지난 20여년간의 우여곡절을 거쳐 이루어진 미-
베트남수교의 의의와 전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베트남수교는 미국기업들로 하여금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장
확대및 경제적 기회를 확보케 하는데 제1차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경제력회복에 최고의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클린턴행정부는 풍부한
자원과 양질의 노동력을 갖고 있는 베트남 경제발전의 잠재력뿐만 아니라
오는 28일 정식으로 ASEAN의 회원국으로 가입예정인 베트남을 발판으로 한
동남아 시장확대와 경제기회확보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말현재 미국의 대베트남투자는 5억7,000만달러로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한국 일본 호주에 이어 7번째이다.

그러나 베트남정부가 앞으로 7년간 미국으로부터 70억달러의 차관을 도입,
도로 항만 통신 등의 사회간접자본건설에 충당하겠다는 계획 등을 감안
한다면 미-베트남 경제협력은 향후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베트남 수교는 양국의 시각에서 볼때 최근 중국의 남차이나해상의
스프라트리, 파라셀 등의 군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 등 패권움직임을 견제
한다는 전략적 이해관계의 수렴화를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미-중-일관계는 양국간 수교이후 최악의 상태로 악화되었다.

중-베트남 관계는 91년부터 정상화되었고 중국은 미-베트남수교를 환영
한다는 공식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나 내심 미-베트남의 자국에 대한 견제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셋째 클린턴대통령은 미-베트남수교를 단행함으로써 내년도 대통령재선
출마에 앞서 남전 기피자라는 비판을 사전에 견제하려는 의도로 미-베트남
조기수교결정에 한몫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의 보브 돌 상원 원내총무및 필 그램상원의원 등이 클린턴대통령의
대베트남수교움직임을 비난해 왔고 이밖에 월남전 참전용사 등 일부 단체들
의 반대도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미-베트남 수교는 경제이익을 비롯한 양국 국익의 부합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양국관계는 빠른 시일내에 급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요컨대 미국은 이제 베트남과의 수교를 바탕으로, 특히 미국기업인들이
베트남에 대한 경제이익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게 됐을 뿐만아니라 월남전
종식후 미국사회에 엄청난 상처를 준 이른바 ''베트남 신드롬''에서 탈피
하였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게 됐다.

다른 한편 베트남은 지난 50여년간 독립투쟁, 이데올로기 각축, 통일전쟁
및 지역패권 추구 등 전쟁과 투쟁사에 명실공히 종지부를 찍고 미국으로
부터의 자본 기술도입 등을 바탕으로 내부지향적 경제발전에 전력투구할 수
있게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