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농이 동부그룹측에 넘어갈 당시 한농의 이사이자 계열사 한정화학의
대표이사였던 김응상씨가 한정화학을 동부측에 M&A(기업인수합병)당하지
않기 위해 노조와 합동으로 국내에서는 생소한 M&A방어작전을 전개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11일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에서 한정화학의 새경영진
과 노조간에 맞붙었던 가처분신청사건이 선고됨으로써 드러났다.

당시 김전대표이사가 사용했던 방법은 회사가 다른 그룹에 넘어가는 것을
반대한 노조와 합심, 새경영진이 기업을 인수하지 못할 정도로 단체협상과
임금인상을 노조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도록 체결했던 것.

임단협 내용중에는 노동조합가입제한을 철폐하고 유니언 숍 형태로 변경,
부장급까지 노동조합가입이 강제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있다.

또 근로자에 대한 징계시 의결정족수를 3분의2 이상으로 하고 징계위원
9명중 4명은 노조가 차지한다고 규정, 노조의 동의없이는 사실상 징계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다 퇴직금누진율 인상은 물론 기본급인상 휴가비및 성과급신설 각종
수당증액.신설 상여금 1백%증액 학자금 확대등에 합의, 노조와 동부측의
적대적 M&A에 공동대응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회사가 경영난으로 폐업할 경우 1년이상의 평균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토록 하는 규정도 신설해두었다.

이 합의안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고 노조활동을 보장할 경우 새 경영진은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커지는등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회사측에
불리한 "혁명적 내용"이었다.

외국의 경우 적대적 M&A을 막기위해 회사측이 이같은 내용을 노조와
체결하는 사례가 적지않으나 국내에서는 한정화학의 김전대표이사가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에대해 새로 들어선 동부그룹측 경영진은 김전대표이사와 노조간에
체결된 임단협은 통모에 의한 것이므로 임단협의 효력이 없다며 노조를
상대로 임단협무효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

재판결과는 동부측의 승소.

노조측과 김전대표이사가 패소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한농등에 대한
동부그룹측의 M&A가 전격적으로 이뤄진 탓에 임단협 제규정을 지키지
못하고 이같은 합의를 한 뒤 사후에 임단협이 제대로 된 것처럼 처리한 것.

즉 노조의 개정안은 매년 2월9일까지 사측에 통보돼야 하는데 김전대표이사
와 노조는 동부측의 인수합병이 알려진 2월28일이후에 개정안을 통보한 뒤
이를 2월9일이전에 통보된 것처럼 날짜를 변경하고 합의한 것.

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는 "통상적으로 생각키 어려운 징계
절차와 과다한 임금협상등이 단기간에 체결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김씨가
노조와 통모해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무효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건은 현재 가처분만 결정됐을뿐 본안소송은 미결상태이다.

김전대표이사와 노조의 M&A방어작전이 본안소송에서 승소할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한은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