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취업하기가 쉬운
것은 물론 세상에 이름을 날릴수 있었다.

그런 풍조에 편승하여 학위를 사칭하는 일이 없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박사학위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학자행세를 한 미국의
마빈 휴위트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휴위트는 수학에 뛰어난 재질을 갖고 있었으나 그가 대학에 갈수 있을
만큼 가정이 풍족하지 못했다.

17세때 학업을 중단한뒤 공장과 화물보관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6년째가 되는 어느 날 그는 신문에서 교사모집광고를 보았다.

대학졸업자라고 속이고 한학기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그에 만족하지 못했다.

1945년 그는 어느 대학의 교수명부에서 이름 하나를 빌려 항공기
제작공장의 항공역학전문기사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가 도용한 이름이 너무나 유명한 사람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정체가 곧 탄로나고 말았다.

휴위트는 필라델피아대학으로 무대를 옮겨 컬럼비아대학 출신의
줄리어스 애쉬킨이라고 사칭하면서 물리학을 가르쳤다.

그 이듬해에 그는 미네소타주의 주립사범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완벽하게 조작한 학위증명서류로 학장을 감명
시켰는가 하면 학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명성때문에 그의 정체가 밝혀지고 말았다.

진짜 줄리어스 애쉬킨교수가 이제 가면극을 끝내라고 점잖게 타이르는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휴위트는 쉽게 포기하고 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RCA사의 전직조사부장 조지 휴위트,철학박사 클리포드 베리,철학박사
케네스 에이츠등으로 행세했다.

그러나 남의 이름을 도용하는 그의 사기극은 다시 들통나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 진짜 케네스 에이츠가 어느 석유회사에 재직하고 있음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자 그는 어쩔수 없이 동경해마지않던 학계를 떠날수밖에 없었다.

박사학위소지자가 극히 적었고 박사학위소지자라면 사회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의 얘기다.

그런데 그로부터 5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는 미국의 과학.엔지니어링
분야의 박사학위소지자중 25%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구하지 못해 사실상
실업상태라는 통계가 나와 격세의 감을 느끼게 한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할수 있었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