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때 그리 얌전하던 옛 벗이 삼풍사고 직후 "이번에 셋은 죽어야 한다"는
극언을 팩스로 보내 오더니,러시아의 오지 여행에서 막 귀국한 다른 고우가
"그곳 어딜 가도 위로한답시고 백화점 얘길 비아냥 거리는 통에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더라"고 쓰게 웃었다.

아직도 둘이상 모이면 화제는 삼풍이고, 온 국론이 거기 맴도니 그렇지
않아도 할일 태산같은 시절에 예삿 일이 아니다.

굵직한 현안도 다섯 손가락이 모자란다.

가까운 것부터 꼽자.

첫째 막 시작한 지자제를 둘러싸고 벌어질 엄청난 갈등의 극복이다.

재정.권한.책임의 배분상 중앙.광역.기초단체간 종적인 마찰, 단체장과
의회및 대등단체간 횡적인 충돌이 불보듯 환하다.

소득증대를 내세운 자연파괴적 개발경쟁, 싫은 것은 결사반대하는 "님비"
에다 좋은건 독식하려는 지역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릴게다.

여기 민선직을 유혹할 독직.부패고리 형성의 위험성 배제여부야 말로
지자제 착근의 승부처다.

둘째 남북대립의 극복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최대 과제다.

평화통일의 충분조건 처럼 여기던 김주석의 죽음이 이미 한돌을 넘겼지만
북노선의 향방은 점치기 힘들다.

16대1로 벌어진 경제규모로 언필칭 체제의 승부는 끝났다치더라도 북을
폭삭 주저앉을 모래성으로 얕봄은 속단이다.

유치원아를 울리고 웃기는 50년 비책은 세계의 연구대상이 되어있을만큼
불가사의다.

비록 와해된다해도 시간이 걸릴수 있다는 증거다.

남북은 적어도 현재까진 제로섬 관계였다.

일종의 상대성원리가 작용한다.

남이 하기에 따라 북의 앞날이 크게 영향받으며 그 역 또한 진이다.

산출상 상당한 오차가 허용되는 GNP의 양적 압도를 가지고 남이 자만하기
보다는 질과 짜임새와 신뢰성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고수해야만 교류-신뢰-
부전-공영-통일로 이어지는 과업의 축차달성이 가능해진다.

근년 사선 넘어 탈출한 북한난민들이 언론에 비치는 남쪽의 사회상을
보면서 속으로 무엇을 생각할지 묻고 싶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워낙 굶주리고 억눌린 북인지라 마치 연시처럼 갑자기 떨어지는 남쪽
사람들의 기대심리도 있을법 하지만 그 반대도 있을수 있다.

통신구 교량 가스관 백화점 할것 없이 육.해.공.지하의 사고가 연발하는
남을 툭치면 폭삭할 종이 호랑이로 얕보는 북의 몽상을 누가 말릴까.

남의 쌀과 경수로를 수용하며 핵개발중지 시늉을 하고는 있지만 남이
결정적 허점을 보일때 홱 돌아서 급습할 가능성은 항상 잠재한다.

그 권력자들이 차우세스쿠의 처지에 몰렸다고 절망할 때 선택폭이 좁다.

여기서 덩치가 웃자란 남이 갖출 덕목은 무언가.

거드름 덤벙댐이 아닌 성숙성이다.

성인에게 체중경쟁보다 혈압 당뇨등 성인병 치료가 요긴한 이치나 같다.

이때 무엇이 중요한가.

순리적 처방에의 순응이다.

내 병은 의사보다 내가 잘 안다고 만심하다간 낭패본다.

셋째 가장 큰 과제로, 세기적 전환점에서 한국 한반도 한민족이 순항할
해도의 대구상이다.

세계는 탈냉전을 구가하지만 명심할 것은 영원한 평화란 없다는 역사인식
이다.

각국이 핵사용 모험을 피해 선전을 자제할 뿐이지 지도자나 정치 기상이
급변할 경우 칼을 빼들 돌발성은 항존하는 것이 인류사회다.

이미 경제성장에 군비를 병행하며 패권 야심을 감추지 못하는 신중국에
대해 미국의 경계심이 발동함은 물론 동남아 연합을 중심으로 영.불까지
의욕을 보이는 ARF(아시아 포럼)가 이지역 집단안보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좌표에 선 국운을 든든히 하기 위해 우리가 할일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남의 탓만 하지 말고 서로의 장점을 북돋우며 자신의 단점을
고치는 일이다.

그래서 동서공화국 삼분공화국 봉투공화국 사고공화국 감투공화국의 오명을
씻어야 한다.

첫째 지자제에서 지역간 선의의 경쟁은 바람직하나 적대감은 극약이다.

한두마디 물어도 누군지 알아볼 동질사회에서 하찮은 구별점이 지역일
따름이다.

해방때만 해도 사그러 들었던 지역대립이 도진 계기가 정치의 표몰이 음모
였음을 깨닫고 분연히 깨어나야 한다.

둘째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든 봉투만능 사상을 뿌리뽑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대형사고의 근원도 정치자금 갹출을 빌미로 날림공사의 폭리를 정.관.업이
분배하던 제도에 연원함을 누구나 안다.

문제는 오늘도 거의 공사 모든 조직에서 다만 몇푼이라도 봉투가 오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총체적 부패에 있고 그런 사회는 망한다는 사실
이다.

셋째 사고공화국의 오명도 봉투유죄지만 동시에 조급과 부실을 자초하는
우리의 국민성이 화근이다.

화교들이 지겨워 했던 "빨리빨리" 조급성, 일인들이 잘 흉보는 "괜찮아"
대강주의다.

공사의 기공 준공은 기술자가 계산하는게 아니고 우격으로 테이프 커팅할
윗사람 편의에, 그것도 가급적 앞당겨 잡는다.

사고나면 차분한 원인분석 재발방지 보다 펄펄뛰며 흥분하다 몇주 안가
다른 사고 터지면 앞의 일 다 잊는,그래서 몇달마다 같은 사고 반복하는
냄비근성도 그 하나다.

언론의 맹목적 속보경쟁, 카메라 의식하는 정치인 기질이 가세한다.

넷째 근본적으로,체통 외면치레 관존민비의 가치관이다.

자식은 나면 서울가 벼슬해야 사람이라는 천년뿌리의 가치기준이 본질적
으로 그대로 온존, 만가지 한국병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내달이면 광복 50년, 한.일수교 30년.

20년후 보자며 현해탄 건너간 일인들은 아시아의 맹주가 돼 있다.

30년 고속성장의 후유증에 허덕이는 한국이 고토나마 통일, 주변세력과
어울려 구실하며 살려면 이제 겉보다 속이 차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