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또 일어났다.

대구지하철 공사장 폭발참사의 악몽이 채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지은지 6년밖에 안되는 대형백화점 건물이 폭삭 무너저
내려 앉았다.

확인된 사상자만도 1천여명이 넘는대참사다.

사고당시 백화점에는 고객과 종업원 1천5백여명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역시 사전에 얼마든지막을수 있었던 예고된 인재였다는 점에서
더욱 분노를 느끼게 한다.

사고가 있기 2,3일전부터 벽에 균열이 가는등 이상징후가있어 백화점 입주
상인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은 물론 백화점 경영진들에게 진작 보고됐으나 이들은 매출
감소를 우려해 쉬쉬하면서 숨겨오다 대형참사를 불러 일으키고야 말았다.

사고당일에라도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이 엄청난 인명피해는 막을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이제 더이상 변명의 말을 늘어놓을 염치도 없다.

"한국은 사고 공화국"이요 "인재의 나라"라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다룬 세계 언론들의 혹평에도 할말을 잊었다.

그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2년 남짓한 사이에 얼마나 많은 대형사고들이
일어났는가.

대구지하철 아현동 가스폭발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구포열차전복사고 아시아나항공 추락사고등 끔직한 대형사고로 수백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재난의 반복은 건설업계에 만연된 고질적인 부실
공사 관행과 정부의 관리능력 부재 우리사회의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이 우리를 더욱 가슴아프게 한다.

지상 5층밖에 안된 개장한지 6년도 채안된 백화점 건물이 저절로 무너져
내릴 정도라면 공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감독이 알마나 허술했는지 짐작
하고도 남는다.

정부는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계기로 전국의 교량은 물론 고층아파트
백화점 극장등 다중이 이용하는 건물에 대한 안전 점검을 지시했었다.

바로 8개월 전의 일이다.

그런대도 대참사를 빚은 삼풍백화점같은 부실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은 정부의 명령이 하나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대체 국가 관리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무너진 건물에 대한 불신이 무기력한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미 크게
번져 있는 민심의 이탈을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무너져 내린 건물더미에 깔린 가족의 참혹한 죽음에 가슴치며 통곡하는
유족들의 울부짖음이 이들의 귀에도 들리는지 묻고싶다.

뒤엉긴 철근과 누더기처럼 겨진채 앙상하게 서있는 건물의 잔해가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고개를 들수가 없다.

이러고도 세계화요 선진국 진입운운하며 자만할 수 있겠는가.

이제 핑크빛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자.

대형참사가 날때마다 지적되온 사항이지만 이번에도 구난체제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기초장비 전문인력의 부족과 지휘체계의 혼선은 효과적인 구조작업을
어렵게 만들었다.

건물붕괴 사고시 생존자 구출을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용접기 절단기
들것 마스크등 최소한의 장비마저도 준비가 안돼 시민들에게 도움을 호소
해야만 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구조활동과는 달리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군
소방대원들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인명피해가 더욱 늘어났다.

무엇때문에 그동안 그토록 열심히 민방위 훈련을 해왔는지 이해가 안간다.

GNP가 1만불이 되었다고해서 선진국에 진입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미국을 보자.

미국인들은 우리가 그토록 자랑해온 공기단축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시간이 남으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하자점검을 해야지 왜 공사를 서둘러
끝내느냐고 의아해한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역사적인 건물들의 공기가 유난히 길었다는 점을 자랑
삼아 강조한다.

"캐피털 힐"로 불리는 의회본관은 건립하는데 50년이상이 걸렸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 자랑스럽게 부착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에는 10년이내에 끝난 지하철도 없다.

긴 소요시간을 자랑삼아 선전한다.

공공건물들 뿐아니라 민간연구소나 건물들도 공사에 걸린 긴 소요시산을
자랑삼아 선전한다.

미국어린이들은 학교들어가면 안전교욱부터 받는다.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를 때도 안전이 주제로 되어 있다.

어릴때부터 안전이 체질화되어 있다.

그래서 알마전 있었던 오크라호마 폭사사건때도 우리가 보기에는 부러울
정도로 침착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단순히 백화점 건물이 주저앉는
사고가 아니다.

우리 사회와 국가의 체면이나 대외적인 공신력이 산산히 무너져 내린
사고다.

정부와 일선행정당국은 참변이 있을때마다 입으로만 안전대책을 되풀이해
오던 지금까지의 관행을 털털 털어버리자.

이길만이 삼풍백화점 사고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국민들의
참담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줄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