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114) 제4부 상사병에 걸린 가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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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밀회 약속까지 받아낸 가서는 세상을 손에 쥔 기분이었으나 약속
장소가 천방이라는 데 마음이 걸렸다.
"천방이라면 사람들의 내왕이 많은 장소인데 어떻게 그 곳에서 숨어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그건 염려마세요.
밤에 시중드는 아이들을 모두 쉬게 하고 양쪽 문을 닫아버리면 다니는
사람들도 없을 거예요.
그 천방보다 더 좋은 밀회 장소가 어디 있겠어요"
그때 하인이 차를 가지고 왔다.
찻물을 끓이는데 약간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가서는 차를 마시는둥 마는둥 하고 서둘러 돌아갔다.
희봉은 시녀 평아를 불러 귀에다 대고 뭐라 뭐라 속삭였다.
평아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가서는 초조하고 들뜬 마음으로 날이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약속
시간이 되자 영국부로 몰래 숨어들어 서쪽 천방으로 갔다.
과연 희봉의 말대로 사람들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짙은 어둠속에서 낮부터 내리던 눈발이 희끗희끗 보일 뿐이었다.
가서가 가만히 살펴보니 대부인의 방으로 통하는 북문을 비롯하여
서문과 남문들은 닫혀 있는데 오직 동문만은 닫혀 있지 않았다.
희봉이 그 동문을 통하여 들어올 것이 틀림없었다.
가서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마음 조이며 기다렸으나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갔는데도 희봉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륵사륵. 드디어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가서는 이제 희봉이 오는 모양이다하고 숨을 죽이며 잔뜩 몸을
움츠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여간 크게 들리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고양이 한마리가 동문 문지방을 훌쩍 넘어오더니 잽싸게 담벼락을
타고 저쪽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고양이라는 것을 안 것은 어둠 속에서 요기스럽게 빛나는
그 두눈 때문이었다.
가서는 문득 희봉이 고양이로 변신하여 들어왔던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덜커덩. 이건 무슨 소리인가.
가서가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동문이 어느새 닫혀버린
것이 아닌가.
바람 때문에 닫혔나 하고 다가가서 열어보았으나 누가 바깥에서
잠갔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제 가서는 꼼짝없이 천방에 갇힌 꼴이 되고 말았다.
사방은 높은 담벽들이라 고양이나 너구리가 아닌 이상 그것을 타고
넘어갈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희봉이 늦게라도 오면 동문을 따고 들어오겠지 하고 한가닥
희망을 걸어보았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도 동문은 다시 열릴 줄 몰랐다.
겨울 찬바람이 눈발을 날리며 마구 불어와 가서의 몸을 점점 얼어붙게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9일자).
장소가 천방이라는 데 마음이 걸렸다.
"천방이라면 사람들의 내왕이 많은 장소인데 어떻게 그 곳에서 숨어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그건 염려마세요.
밤에 시중드는 아이들을 모두 쉬게 하고 양쪽 문을 닫아버리면 다니는
사람들도 없을 거예요.
그 천방보다 더 좋은 밀회 장소가 어디 있겠어요"
그때 하인이 차를 가지고 왔다.
찻물을 끓이는데 약간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가서는 차를 마시는둥 마는둥 하고 서둘러 돌아갔다.
희봉은 시녀 평아를 불러 귀에다 대고 뭐라 뭐라 속삭였다.
평아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가서는 초조하고 들뜬 마음으로 날이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약속
시간이 되자 영국부로 몰래 숨어들어 서쪽 천방으로 갔다.
과연 희봉의 말대로 사람들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짙은 어둠속에서 낮부터 내리던 눈발이 희끗희끗 보일 뿐이었다.
가서가 가만히 살펴보니 대부인의 방으로 통하는 북문을 비롯하여
서문과 남문들은 닫혀 있는데 오직 동문만은 닫혀 있지 않았다.
희봉이 그 동문을 통하여 들어올 것이 틀림없었다.
가서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마음 조이며 기다렸으나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갔는데도 희봉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륵사륵. 드디어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가서는 이제 희봉이 오는 모양이다하고 숨을 죽이며 잔뜩 몸을
움츠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여간 크게 들리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고양이 한마리가 동문 문지방을 훌쩍 넘어오더니 잽싸게 담벼락을
타고 저쪽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고양이라는 것을 안 것은 어둠 속에서 요기스럽게 빛나는
그 두눈 때문이었다.
가서는 문득 희봉이 고양이로 변신하여 들어왔던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덜커덩. 이건 무슨 소리인가.
가서가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동문이 어느새 닫혀버린
것이 아닌가.
바람 때문에 닫혔나 하고 다가가서 열어보았으나 누가 바깥에서
잠갔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제 가서는 꼼짝없이 천방에 갇힌 꼴이 되고 말았다.
사방은 높은 담벽들이라 고양이나 너구리가 아닌 이상 그것을 타고
넘어갈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희봉이 늦게라도 오면 동문을 따고 들어오겠지 하고 한가닥
희망을 걸어보았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도 동문은 다시 열릴 줄 몰랐다.
겨울 찬바람이 눈발을 날리며 마구 불어와 가서의 몸을 점점 얼어붙게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