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98) 제3부 대옥과 보채, 영국부로 오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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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채는 보옥이 문발 틈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보옥은 새삼 보채의 용모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훔쳐보았다.
윤기가 흐르는 까만 머리채는 똬리처럼 틀어 얹었고,미색 솜저고리에
자색 털조끼,옥색 비단치마 들을 입고 있었다.
그 옷들은 화려하지 않고 약간 색이 바랜 듯 수수하게 보였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인데도 두 뺨은 보름달 처럼 훤하였고 입술은
앵두처럼 붉었다.
눈썹은 먹으로 그린 듯 진하고 눈동자는 가을물처럼 맑았다.
무엇보다 차분한 분위기가 보채의 몸 전체를 싸고 있어 안정감을
주었다.
처음에 보채가 영국부로 왔을 때 사람들은 품위가 느껴지는 보채의
단아한 모습을 보고 대옥 보다 낫다고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대옥 역시 아름답지만 병색이 있는 데다 교만하다 싶을 정도로 좀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반면,보옥은 침착하면서도 활달하고 상냥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리고 주위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어서 사람들로부터 자연히 호감을 사게 마련이었다.
견습을 받고 있는 어린 시녀들조차도 대옥보다는 보채를 더 좋아하고
따랐다.
그러니 대옥이 보채를 은근히 시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물론 보옥은 늘 같이 지내다시피 하는 대옥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더 친밀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지만,보채가 오고 나서부터 대옥의
투정이 부쩍 심해진 것 같아 짜증이 나는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보옥
자신도 보채로 인해 일어나는 대옥의 시기를 속으로 즐기며 부추기는
경우도 있었다.
"누나,이제 병이 다 나았어?"
보옥이 방금 왔다는 듯이 성큼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안부를 묻자 보채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유, 난 또 누구라구.이렇게까지 걱정해주니 너무 고맙군요"
보채가 반색을 하며 보옥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시녀인 앵아를 시켜 차를
내오도록 하였다.
보옥이 차를 마시는 동안 보채는 보옥의 식구들에 대하여 자상하게
안부를 물으며 보옥이 목에 차고 있는 옥구슬을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누나, 이거 만져보고 싶어서 그러지? 내가 태어날 때 입에 물고
왔다는 구슬이라는 소문을 듣고 말이야"
보옥이 보채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목에서 옥구슬을 거두어 보채 손에
쥐어주었다.
보채가 옥구슬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살펴보니,머리 부분에 전서체로
통령보옥이라는 글자가 조금 크게 새겨져 있고 앞면과 뒷면에도 작은
글자들이 역시 전서체로 촘촘히 적혀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2일자).
못하고 있었다.
보옥은 새삼 보채의 용모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훔쳐보았다.
윤기가 흐르는 까만 머리채는 똬리처럼 틀어 얹었고,미색 솜저고리에
자색 털조끼,옥색 비단치마 들을 입고 있었다.
그 옷들은 화려하지 않고 약간 색이 바랜 듯 수수하게 보였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인데도 두 뺨은 보름달 처럼 훤하였고 입술은
앵두처럼 붉었다.
눈썹은 먹으로 그린 듯 진하고 눈동자는 가을물처럼 맑았다.
무엇보다 차분한 분위기가 보채의 몸 전체를 싸고 있어 안정감을
주었다.
처음에 보채가 영국부로 왔을 때 사람들은 품위가 느껴지는 보채의
단아한 모습을 보고 대옥 보다 낫다고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대옥 역시 아름답지만 병색이 있는 데다 교만하다 싶을 정도로 좀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반면,보옥은 침착하면서도 활달하고 상냥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리고 주위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어서 사람들로부터 자연히 호감을 사게 마련이었다.
견습을 받고 있는 어린 시녀들조차도 대옥보다는 보채를 더 좋아하고
따랐다.
그러니 대옥이 보채를 은근히 시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물론 보옥은 늘 같이 지내다시피 하는 대옥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더 친밀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지만,보채가 오고 나서부터 대옥의
투정이 부쩍 심해진 것 같아 짜증이 나는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보옥
자신도 보채로 인해 일어나는 대옥의 시기를 속으로 즐기며 부추기는
경우도 있었다.
"누나,이제 병이 다 나았어?"
보옥이 방금 왔다는 듯이 성큼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안부를 묻자 보채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유, 난 또 누구라구.이렇게까지 걱정해주니 너무 고맙군요"
보채가 반색을 하며 보옥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시녀인 앵아를 시켜 차를
내오도록 하였다.
보옥이 차를 마시는 동안 보채는 보옥의 식구들에 대하여 자상하게
안부를 물으며 보옥이 목에 차고 있는 옥구슬을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누나, 이거 만져보고 싶어서 그러지? 내가 태어날 때 입에 물고
왔다는 구슬이라는 소문을 듣고 말이야"
보옥이 보채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목에서 옥구슬을 거두어 보채 손에
쥐어주었다.
보채가 옥구슬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살펴보니,머리 부분에 전서체로
통령보옥이라는 글자가 조금 크게 새겨져 있고 앞면과 뒷면에도 작은
글자들이 역시 전서체로 촘촘히 적혀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