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남동쪽으로 80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크레모나는
"스트라디바리"의 산실로 유명하다.

스트라디바리는 바이올린 연주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18세기의
명기이다.

크레모나는 이제 또하나의 명작을 자랑하게 됐다.

악기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철강분야에서 명성을 기대하게 됐다.

주인공은 크레모나철강을 산하에 두고 있는 피나르베디사의 지오바니
아르베디회장(57).

고품질의 철강제품생산방식에 "혁신"을 가져온 인물이다.

그는 어릴적부터 철과 친했다.

15살때 가업이었던 철강제품 유통사업에 뛰어들었고 25살때는 아예 부친
으로부터 전권을 넘겨받아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철강유통사업에 만족할수 없었다.

63년 크레모나에 소형 철강공장을 세워 화학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강철관을
만들면서 철강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그럭저럭 꾸려갔으나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칠수 없었다.

쇳물을 순식간에 강철관에 적합한 철판으로 만들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종전방식은 에너지도 많이 소비되고 완제품을 생산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공장면적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물론 공해문제도 걸렸다.

그는 미철강업체인 누코르사가 88년 인디애나주에 신축했던 철강공장에
주목했다.

"고품질의 얇은 강판을 단시간에 생산한다는 것은 당시까지만해도 이룰수
없는 희망에 불과했지요. 누코르공장은 그러나 희망을 현실화할수 있다는
확신을 줬어요"

그는 곧 독일 철강제조설비업체인 마네스만사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크레모나에 이 기술을 적용한 공장을 건설키로 합의했다.

그는 이를 위해 2억7,000만달러의 공장건설자금과 6,000만달러의 운영자금
을 투입했다.

필요자금은 대부분 은행신세를 져야 했다.

특허권의 절반을 나눠 갖는다는 조건이었지만 그에게는 모험이었다.

"이제까지 한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혁신적인 신기술에 기업의 운명을 건
좋은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그는 당시를 회상한다.

93년부터 상업생산에 들어가면서 그의 과감한 투자가 성공적인 것이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통상 3시간 걸리던 작업공정을 단 15분으로 줄이고 에너지소비량도 3분의1
로 낮출수 있었다.

쇳물을 식히며 철판으로 만들기에 필요한 라인길이도 10분의1로 줄일수
있었다.

종업원 숫자는 월 55만t의 철강을 생산하는 공장치고 규모가 작은 400명에
불과했다.

그만한 크기의 공장이라면 1,200명 갖고도 모자라는게 보통인데도 어려움
없이 공장을 가동할수 있었다.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철강시장에 가격파괴를 선도했다.

유럽의 주요철강업체보다 t당 25달러가 싼 458달러에 공급할수 있었던
것이다.

크레모나에 세계 철강업계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지금 신기술이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철강업체인 한국의 포항제철과 처음으로 기술이전계약
을 체결했으며 유럽의 대형 철강업체와도 잇따라 계약을 체결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크레모나는 철강에 관한한 최고 아이디어의 본거지가 될 것입니다.
크레모나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전세계 철강공장에 접목되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일뿐"이라고 그는 자신한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