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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은 31일"한국의산업화와 사회변화-계급구조적
접근"이라는 주제의 학술발표회를 가졌다.

구해근 하와이대 사회학과 교수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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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및 다른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에 관한 연구는 주로 시장대 국가의
논쟁으로 특징지어졌다.

동아시아 국가가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을 한 이유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이 나라들이 시장원리에 충실한 경제발전 전략을 추구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수정주의 학자들은 그와 반대로 강력한 국가주도의
산업화정책을 강조했다.

그러나 결국 시장주도대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은 일면만을 과장하는
것이고 경제발전의 현실은 시장과 국가의 긴밀한 상호관계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다.

이때문에 최근에 각광을 받는 신제도주의 경제론은 시장과 국가의
이분론을 넘어서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넓은 의미에서 사회제도는 국가와 시장을 다 포함하는 개념이고
국가기구의 성격,사유재산 제도,법적체계,그리고 다른 사회적 경제적
제도가 한 사회의 경제행위와 국가적 경쟁력을 결정하는 필수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은 발전이론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갖고있다.

사회학적 접근은 이런 발전론적 경제이론의 문제점들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사회학적 분석이 경제학적 발전이론들을 대체할수 있는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시각을 넓히고 이론적 보강도 할수 있다고 본다.

특히 계급분석은 한국경제의 변화를 경제발전으로만 보고 그 성공의
비결을 찾는데만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게 산업화과정으로
파악하고 산업화의 구조적 동인을 포함하여 그 과정과 사회적 정치적
결과까지 포함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폭넓은 이해를 위해서 계급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계급이
국가의 성격과 사회제도를 규정하고 사회집단간의 관계를 형성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의 계급구조는 어떻게 산업화에 영향을 미쳤는가.

한국의 계급과 산업화와의 관계는 두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형성된 계급구조의 특성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한국에서는 해방이후의 정치적 사회적 변혁과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지주계급이 완전히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지주계급이 온전한 사회에서는 산업화로의 성공적이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주계급을 도태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다는것은 동아시아
연구자들이 가끔 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주계급의 부재와 동시에 중요한 사실은 해방이후 등장했던 강력한
노동운동의 거세이다.

따라서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시작한 1960년대 한국의 노동자들은
아무런 조직적 힘이 없이 유순하고 일잘하는 노동자로서 대거 동원될수
있었다.

또한 자본가들의 세력도 극히 미약했고 국가권력에 의존하는 존재였다.

바로 이런 계급구조가 한국 국가의 독자성을 담보하게 했고,정부가
다른 세력의 도전없이 산업화전략을 추구할 수있게 하였다.

만약 한국이 남미나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같은 계급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면 국가의 독자성도 산업화전략의 일관적인 추구도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둘째 역시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때 한국의 계급구조와 신분질서는
극히 개방적이고 유동적이며 강한 상승이동에의 욕구를 조성시키는
제도였다.

과거의 인습과 신분질서의 구속이 없고 평등의식이 팽배한 사회는
개인들의 상승이동에의 욕구와 창조적 노력이 극대화되는 사회이다.

다행히 한국은 60년대초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추구하기 이전에 이런
계급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요컨대 한국이 역사적으로 물려받은 계급구조는 국가주도의 산업화
전략을 추구하는데 극히 우호적인 상태에 있었다.

전체적인 계급구조나 신분질서의 성격으로 보아 최근까지의 한국사회는
프티부르주아사회라고 특징지을 수있다.

1950년대의 경우 인구의 대부분이 계급구성상 프티부르주아(소자산가)에
속하는 자작농과 도시자영업자들이기도 했지만 피고용자들도 소자산가의
욕구와 행동양식을 강하게 가진 사람들이었다.

사회학이론들이 설명하듯이 프티부르주아지는 이 계급의 모호성때문에
대체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정치성향을 가지며 실용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상승이동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는다.

그리고 집단적이고 장기적인 전략보다 단기적이고 융통성이 있는
방법을 택하고 일반적으로 국가의 중립적 역할에 대한 기대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여러 면에서 해방이후 한국사회는 특정계급과 상관없이 프티부르주아적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실용적이고,개인주의적이고,술발력이 강하고,상승이동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이것은 한국사회의 계급구조적
특징과 직접 연관되는 사실이고 동시에 한국이 다른 제3세계나라들보다
더 빨리 성공적으로 경제발전을 할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적 요인을 무시하고 국가의 발전전략이나 제도적 요인들로만
한국의 경제발전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한국의 계급구조적 특성은 사회계급들이 이익집단으로서 국가의
발전전략에 개입할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게한 반면 국가가 발전전략을
위하여 인적 물적 자원을 풍부하게 동원할수 있게 하였다.

이 사실은 한국의 노동자와 기업가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얘기이다.

일단 박정희 정부가 수출주도형 산업화정책을 채택한후에 기업가들은
자본의 규모에 상관없이 모두 적극적으로 수출드라이브정책에 참여했고
또 노동자들도 장시간의 혹독한 노동을 자발적으로 제공하였다.

선진산업국가에서 보는 노동자들의 강한 조직적 저항이나,또 다른
제3세계에서 보는 노동자들의 질적인 문제가 한국에서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프티 부르주아적 한국 자본주의는 이러한 비교적 안이한
계급역학 때문에 바람직한 산업조직이나 노사관계를 발달시키는데
등한하게 하였다.

서구의 경우나 일본의 산업화과정에서 보듯이 안정적인 노사관계나
산업조직은 산업화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조직된 요구와 그에 대응하는 자본과 국가의 전략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국가의 억압적인 노동정책으로 노동자계급의
힘이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 자본가들은 프티 부르주아지적 성향을
계속 유지해 왔다고 볼수있다.

즉 장기적인 제도적 개혁보다 사업의 외연적 팽창과 순발력 융통성을
중시해왔고 또한 정부의 경제정책도 기업가들의 이런 프티 부르주아적
성향을 조장해왔다고 보겠다.

그결과 한국의 노동운동은 다른 동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과격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프티 부르주아적 특성을 가진 한국의 계급구조는 한국의 산업화
전략에 유리한 구조로서 자본과 노동의 순발력있는 대응을 가능하게
하였으나 반면에 계급세력간의 역학에 의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산업조직과 노사관계를 정착시키는 과정을 지연시켰다.

87년이후 노동운동의 활성화는 자본가들에게는 골칫거리이며 일시적으로
경제적인 타격을 초래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진정한 근대화와 세계화에 궁극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