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12월23일.

순천공립농업학교에서는 때아닌 졸업식을 가졌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렀을 당시 일제는 병력이 모자라자 학생을
징병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통상 다음해 2월에 갖게될 졸업식을
앞당겨 가지도록 각급 학교에 종용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것이 오늘날의 우리모임 이삼회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그때 순천농고를 졸업한후 서울에 있는 동창들이 졸업일을 기념하여 갖는
모임일이 매월 23일이 되었고 모임이름도 이삼회로 됐던 것이다.

우리들은 단순한 동창 모임이라기 보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올바른
인생관을 평생토록 지켜나가자는 뜻에서 출발하였다.

그렇다고 요한한 행사를 갖기보다 우리들 스스로의 행동을 올바르게
가짐으로서 후배들이나 자식들에게 모범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은사분이었던 송재철(국민은행 송달호부원장의 선친)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늘 진인사대천명을 강조하셨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할일을 다하고난 연후에 하늘의 명을 기다려 그에
따라 행하라는 말씀이셨다.

불평이나 허욕을 바라지 말고 일단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치심은 우리들에게 두고두고 교훈이 되고있다.

선생님께서는 농학의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시어 당시 총독부로 부터
단위면적당 벼수확을 가장 많이 해 다수확최고상을 받은바도 계셨으며
퇴임후에는 학술원회원으로 추대되시어 후학들에게 다방면의 가르침을
주셨다.

나는 선생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상공부대변인시절 백양대표이사시절들에
죄우명처럼 되새기며 훌륭한 길잡이로 삼았다.

지난해에는 우리 이삼회 회원들은 선생님의 묘소를 찾아 성묘와 함께
여섯그루의 향나무를 심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들은 학창시절의 벗에서 출발해 믿음의 벗,
마음의 벗이자 인생반려자로서 갖가지 애경사에 마음을 같이하면서 봄가을
이면 1박2일의 일정의 일정으로 전국의 명산대찰들을 둘러보며 인생을
반추해 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