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회사중 올해로 창업50년이상되는 회사는 모두 34개사다.

이중 사사를 한번이상 발간한 회사는 조흥은행 상업은행 경방 동양화재
삼양사 진로 유한양행 제일은행 대한통운 동아제약 한일은행 LG금속
삼성물산 한국타이어 기아자동차 해태제과 대한페인트 잉크 백화등 모두
18개사다.

동화약품 한진중공업 대웅제약 동아건설 고려제강등은 편찬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올해로 창업40년 이상되는 상장회사는 96개, 30년이상이 170개, 20년이상이
253개, 10년이상이 137개사에 이른다.

이중에도 상당수회사가 사사를 발간했거나 편찬작업중이다.

그러나 국내 사사가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경향이 있다.

통상 일부 페이지를 컬러로 인쇄하기 때문에 으레 최고급 종이를 사용하고
있다.

그위에 융 또는 포클로즈로 표지를 싸고 금박으로 표제를 박는다.

그 두께가 1,000쪽에 육박하고 여성잡지 크기의 국배판이 대부분이다.

이 정도의 사사를 제작하려면 원고 탈고후 편집.인쇄.제본비 등의 제책비만
권당 3만~4만원에 이른다.

이런 경향이 역사의 기록을 중요시하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라면 하등
걱정할 것이 없다.

또한 사사도 기업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상품으로 보면 다른회사것보다 더
좋게 만들려고 하는 경쟁심리는 당연하다.

그러나 비싼것을 가져야 우월감을 갖고, 그래서 포장을 최상으로 싸는
사회에 만연된 허례허식이 사사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결국 이러한 키재기식의 체면의식때문에 사사가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회사홍보용으로 전락하고 있다.

사사의 목적과 가치는 역사적 경험을 후대에 전하는데 있다.

사사에 역사적 여건과 그것을 헤쳐온 의지를 기록하면, 그런 사실들은
직원들에게 자긍심과 연대의식을 주고 일반 독자들에게 끈끈한 신뢰감을
줄수 있다.

험난한 길을 걸어온 회사일수록 그 사실은 독자들에게 강한 신뢰감을 줄수
있다.

강한 생명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온 고난의 역사를 당당하게 서술한 사사는 많지 않다.

경영상의 실수나 판단 착오 등은 숨기고 자랑거리를 나열하고 아전인수식의
해석까지 덧붙인 사사가 흔하다.

사사는 역사적 논픽션이다.

이런 글의 생명은 사실성과 객관성에 있다.

지금처럼 껍데기만 화려하고 주관적이고 가시적인 사사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이러한 풍토는 그 원인이 역사에 대한 인식 부족에 있지만, 거기에
무엇이든 서둘러 마치려는 우리 사회의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의 경험적 상상으로 글을 쓰는 문학작품과 달리 사사는 반드시 과거의
역사적 자료를 찾아 사실 여부를 검증해 가면서 서술해야 한다.

자료없이 상상력과 유추로 역사적 사실을 복원할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료를 찾는데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심지어 1년만에 사사를 제작하려는 회사도 있다.

일반 단행본을 제작해도 원고 탈고후 편집 인쇄 제본에 평균 6개월이
소요된다.

사사는 일반 단행본보다 제작에 훨씬 더 많은 품이 든다.

지금처럼 기록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현실에서 6개월 동안 역사적 자료를
찾고 검증하고 서술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거의 모든 회사가 때가 되면 사사 발간을 작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그릇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종이 등 국가적인
자원 낭비만 부채질 한다는 우려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하루빨리 사사 발간의 일차적 목적이 기업 홍보에서 역사 기록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꾸미지 않는 사실의 기록이 후세에 "역사의 교훈"으로 남는 훌륭한 유산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울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껍데기 과시욕과 허례허식의 병폐가 사라져야
한다.

유귀훈 < 역사방주간 / 서울 서초구 서초동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