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장은 김부길 부사장께서 맡으실 예정입니다. "

지난 93년1월초 신영증권 시무식에서 박병열 당시 사장은 후임자를
알리는 이같은 공식발표를 했다.

사장 임기가 아직 6개월가까이 남은 싯점-. 내밀한 사정이 있어서
후임자를 미리 못박아두자는 것이 아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해동안의 크고 작은 일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김사장 취임이
예고된 것일 뿐이었다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이렇게 김부길 사장 시대가 열렸다.

전임 원사장과 박사장은 신영증권을 공동 인수한 창업자들이라는 데서
김사장의 취임은 고용직 사장의 첫발을 뗀 것이라 할수있다.

김사장은 원회장이 신영증권을 인수할때 과장으로 옮겨와 그의 분신처럼
일해왔고 그의 말대로 "오직 한우물을 판 끝에" 고졸출신으로 사장자리에
까지 올랐다.

지금 신영증권에서 일하는 임원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중도에 회사를 박차고 떠난 사람도 없다.

김사장휘하의 이열재전무는 71년 원회장의 창업과정에서 김사장에게
발탁돼 이회사에 합류한 창업공신이다.

김태길전무는 2년뒤인 73년 원회장이 다니던 대림산업에서 신영증권으로
합류했고 정종열상무와 정용한상무도 77년에 이회사로 옮아온 이후 외길을
파고있다.

모두가 눈짓만으로도 알아듣는 처지여서 이회사에서는 비밀이 없다.

비밀이 없으니 소위 인너서클이 있을 수없고 지연도 학연도 이회사에서는
불가능하다.

경영공시제도에 따라 한달에 한번씩 부서별로 중요사항을 미리 공개하고
되돌아오는 의견을 수렴하고-.급여는 직원대표로 구성되는 가족 협의회
에서 결정하고-.

"월급쟁이들의 작은 천국"이라고 이회사 사정을 잘아는 증권계의 한
원로는 부러워하고있다.

오너 원회장의 친아들이 이회사에 근무하지만 입사 동기생들과 똑같이
대리가 됐고 과장이 되어 역시 같은 조건에서 일하고있다.

신영증권의 상품주식 운용은 기록적인 수익율로 정평이 나있다.

1주일에 한두번씩 열리는 상품운용회의에는 국제 자금 채권 조사등
관련부서가 모여 토론을 벌이고 여기서 결정하면 그대로 실행된다.

사장이 간섭하는 법도 없고 임원들이 나서서 무슨소리냐며 말을
가로막지도 않는다.

"그래서야 일이 되겠느냐"고 영업담당 정상무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경영진이 단기승부를 재촉하지 않으니 부실주가 있을 수도 없다.

일주일에 한번씩 지점장 회의를 열어 약정목표는 정하지만 실적이
나쁘다고 해서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

"거짓말같이 들리겠지만 이렇게 일하고있다"고 박근배감사는 설명하고
있다.

지난 93년 증권감독원에서 이회사로 부임해온 박감사는 자신이 이 회사
에서 일하게 된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신영증권에는 오는 27일 주총을 앞두고 작은 마찰이 생겨 있다.

김사장은 내년에 취임할 후임사장을 미리 공개하자는 주장이고 두사람
전무들은 무슨 말씀이냐는 주장.이전무는 "자신은 몸이 약하니 김전무를
사장에 임명해줄 것"을 간청하고있고 김전무는 "그래도 이전무 먼저"라며
사양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름다운 증권사 신영증권에 대한 판단은 그러나 아직은 유보상태라
할수밖에 없다.

안전운행만이 기업경영의 모범답안이냐는 문제도 해답을 기다리고있고
급변하는 경영환경하에서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투자가 급하다는
주장도 옳은 지적이다.

가족같은 분위기도 좋지만 과감한 인재의 발탁이 장래의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신영증권 사람들은 새겨들어야한다.

그러나 증시가 장기침체되면서 각종 증권사고가 터져 나오고 있는
요즈음 신영증권 사람들을 다시 보게되는 것은 어쩔수 없다고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