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산업현장 곳곳에 무한경쟁의 파고를 노와 사가 함께 헤쳐나가겠다는
협력의지가 용솟음치고 있다.

회유와 양보,계산과 타협의 형식적 협력관계는 어두운 시절의 씁쓸한
기억으로 사라지고 있다.

상호신뢰와 합리적제도를 밑바탕으로 공존공영의 새로운 노사관계창출에
애쓰는 업체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2월16일 고려제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1천5백여개의 사업장에서
"노사협력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건설 운수 도.소매 금융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전업종
을 망라하고 있다.

지난해 노사화합선언업체가 12개에 그친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달라진
양상이다.

홍익대 박래영교수는 이같은 변화의 원인을 "대외경쟁의 심화로 이대로
가다간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현장의 위기의식과 함께 노사협력의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협력마인드가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노사관계자들도 이같은 변화의 새바람이 거스를수 없는 대세
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 바람은 비단 노사관계의 변화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의식구조와 생활
양식, 사용자측의 경영마인드, 나아가 노동문화전반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하다.

일부 사업장에서 있었던 "영원한 무파업" "노경헌장" "무한협력"선언등은
우리의 노사관계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제부터는 노사 상호간에 확인된 협력원칙을 실행에 옮길수 있는 세밀한
프로그램과 장치를 마련해야할 때이다.

최근 잇따른 노사화합선언이 올해만의 한시적인 현상에 그치게 해서는
안된다.

가까스로 틔운 협력의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다.

노측과 사측간 신뢰의 확대와 유지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최고경영자는 근로자의 불합리한 요구를 과감히 거절하면서도 근로자가
요구하기전에 필요한 부문의 투자에 과감히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근로자가 최고경영자에 대해 신뢰를 가지면 소속기업에 대한 일체감과
공동체의식을 자연스럽게 지니기 마련이다.

중간관리자들은 최고경영자의 의지를 근로자에게 이해시키고 그들의 불만과
요구사항을 경영진에게 여과없이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기업내 모든 문제가 최고경영자와 노조위원장간 "담판"을 통해 해결될수만
은 없다.

중간관리자들은 노조사무실을 수시로 들러 노조와의 대화창구를 넓히고
자신이 해결할수 있는 영역을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

노조간부들도 근로자와 그가족들의 권익증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조집행부는 노조원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합원을 위해 사소한일부터 대신한다는 자세를 지님은 물론 소수의 강한
발언에만 이끌리지 말고 말없는 다수를 대표하는 노력을 해야한다.

노사양측은 협력을 다지기위한 다양한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좋다.

체육대회개최 사회봉사활동 기업문화정립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등
많은 분야에서 협조체제를 갖출 경우 동반자관계로서의 유대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 모든 노력들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도 겪을수 있다.

어차피 산업현장의 평화와 노사협력이 국가경쟁력배양과 기업의 생존을
위한 시대적 요청이라면 반드시 해내야 한다.

변변한 자원하나 없는 척박한 땅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던 것처럼.

현재 노사관계에서 앞서가는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의 협력프로그램을 시도
하고 있다.

경영설명회도 자주 열고 근로자에 대한 교육과 복지부문에 대한 투자도
늘리는 추세다.

노조도 책임있는 경제주체로서 자신의 역할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비록 초기단계지만 이들 기업과 노조의 다양한 시도는 앞으로 산업평화와
기업발전의 밑거름으로 쌓일 것이다.

나아가 협력적 노사관계를 일궈내는 기업이 많아질수록 한국의 산업현장
에도 재도약의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냈다"는 주제아래 새로운 시각으로 국내모범업체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려는 것도 노사가 자신감을 갖고 서로 손잡고 새지평을
향해 달려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그뜻을 두고 있다.

< 김시행 특별취재팀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