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잠시도 멈출 겨를없이 앞을 향해
달려왔다.

뛰면서 생각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는 것이 행동지침이었다.

그러는중 경제지표를 앞당겨 읽는 습관도 자랐다.

요즘은 올해가 1인당 GNP(국민총생산)1만달러를 넘는 해라고 미리부터
들떠 있다.

시차상 2년쯤 뒤진 타국의 가용지표에다 앞질러 계산한 국내지표를
맞비교하니 몇년을 득을 본다.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기만하는 결과가 되기 쉽다.

대통령이 "1만달러 시대의 삶의 질"을 강조한지 며칠만에 통계청이
선진그룹(OECD)25개국과 한국의 각종 통계를 비교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그 비교를 한마디로 종합한다면 경제수준은 10위권 남짓,복지수준은
20위권 정도라고 평가되었다.

그러나 가까이 살피면 경제수준 10위권이란 해석은 부정확하다.

정확하게는 GDP(94년)는 3,795억달러로 26국중 9위이며 1인당 GNP(93년)는
7,513달러로 23위이지 더도 덜도 아니다.

인구수를 곱한 총생산(GNP)은 사물의 덩치에 비유되므로 26국중
한국의 총생산규모가 9번째로 크다는 양적 개념이다.

따라서 질적 비교를 하려면 GNP나 GDP가 아니라 1인당 GNP 또는
1인당 GDP를 척도로 함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경제수준 10위권 표현자체가 불성이다.

1인당 생산 23위라면 10만명당 의사수,주당 평균근로시간,평균수명,교사1인
당 학생수등 복지수준이 20위 이하로처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숫자의 마술에 혼란이 따르는 것은 필요에 따라 국민을
치켜 세워야 하는 정치쪽의 필요악에도 탓이 있겠으나 전문가 집단이나
매체들이 해석의 적정성을 확보해 의도적인 통계의 오도와 악용을
막는 일이 중요하다.

사실 잘해야 내년에 한국의 가입이 승인될 OECD는 대체로 소득순의
선진국 그룹이니 비가입국을 기존 회원국들과 맞비교하면 밑으로
처져야 순리다.

그러나 크게 보자.세계 200여 국가가운데 경제규모 11위,1인당
생산 23위라는 현 위치매김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나라수로 쳐서
10%권 접근이니 학업으론 우등생 가깝다 할수 있다.

문제는 양과 질의 경중이다.

가능만 하다면 두가지의 병행이상 좋을게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양우선에서 출발,발전단계에 따라 질우선으로
전환해 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30여년간 질은 당분간 뒤로 하고 양을 추구했기에 오늘의
위치에 올수 있었음을 시인해야 새출발도 가능하다.

앞으로 계속 양 채우는데 매달리면 뒤처진 질의 만회란 불가능해진다.

무엇보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모든 사회조직이 엉성해져서 사고연발에
효용이 낮고 불편하다.

결과적으로 돈도 더 든다.

돈 시간 아끼려고 싸게 급히 세운 결과 시행착오의 시정비용이 더
커진다.

이제부터 정권 행정 언론 사회 전반이 모두 "빨리빨리"병을 벗고
콘크리트 양생하듯 차분히 다지는 버릇을 키워야 한다.

고질의 삶을 앞당기는 길은 그리 먼데서 찾을게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