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곡 김향수아남그룹명예회장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조립 전문회사를
일궈낸 집념의 기업인으로 통한다.

그는 일본 "경영의 신"이었던 고마쓰시타 고노스케옹과 인생관이나 경영
이념에서 의기투합해 관포지교를 맺기도 했던 "철학"이 있는 경영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57세)에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세인의 주목을
끌었던 그가 83세의 나이로 미수를 앞둔 올해는 회혼기념을 겸해 "일본속의
한민족 혼"이라는 여섯번째 저서를 출간하는등 또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본사 유화선산업1부장과 이학영.조주현기자가 서울 성수동 아남그룹빌딩
7층의 명예회장실로 그를 찾아가 자서전 제목처럼 그가 걸어온 "지성일관의
길"을 되짚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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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유화선 < 산업1부장 > ]]]

-무척 건강해 보이십니다. 70년대 말인가 인후암 수술까지 받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정정하신데는 뭐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 것
아닙니까.

<>김회장=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까요. 40여년동안
단전호흡으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오고 있지요.

동의보감에 나오는 18가지 안마를 하고 있는데 코와 귀를 문지르는등
주로 머리의 혈액순환을 돕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큰 아드님에게 회장자리를 넘겨주시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신지도 3년이
넘었습니다.

새 회장은 기대한 만큼 경영을 잘하던가요.

<>김회장=아무래도 젊은 사람(김주진회장은 올해 60세다)이니까 나보다
낫다고 봅니다.

사실 지금 회장은 말이 2세경영인이지 나와 같이 사업을 일으킨 동업자나
마찬가지입니다.

부회장(김주채.차남)도 미국 듀폰사 선임연구원으로 지내다가 74년부터
회사경영에 합류해 볼모지대나 다름없는 반도체 사업을 같이 했으니까요.

-반도체사업을 하시기로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김회장=67년으로 기억합니다만 어느 신문엔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에서 재미반도체 연구종사자들을 초빙해 강연회를 갖는다는 기사가
났었지요.

신문기사는 반도체에 대해 소개를 하면서 "트렁크 하나만 채워도 1백만-
2백만달러는 거뜬히 받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썼는 데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당시의 수출품이라 했댔자 1차상품이 고작이었는데 배 한척에 가득 채워도
20만달러정도의 돈 밖에 받지 못했으니까요.

즉각 녹음기를 준비해 강연장으로 달려가 제일 앞자리를 차고앉아 강의
내용을 모두 녹음하고는 집에 돌아와서 밤새도록 되풀이해 복습을 했습니다.

그러고나니 시쳇말로 눈이 뒤집히더군요. 바로 이 사업을 지금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주변에선 반대가 많았을텐데요.

<>김회장=다들 말렸어요. 큰아들(김주진회장)도 극력 반대했고요. 잘
알지도 못하는 사업인데다 내 나이가 환갑을 바라볼 때인지라 그럴만도
했죠.

그러나 자식들이 다들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었고 나 개인적
으로는 7남매중의 막내로 태어나 자수성가를 한 몸이었으니 더이상 미련을
가질 일도 없었습니다.

-사업초창기엔 고생이 무척 많으셨겠네요.

<>김회장=말해 무엇합니까. 정말이지 나는 반도체사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은행에서 1전도 빌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도체사업을 하면서 은행에 손을 벌리는 신세가 돼 버렸어요.
생전 처음 해보는 돈빌리는 일로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돈고생" 못지않게 "기술고생"도 컸다고 들었습니다.

<>김회장=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지요. 처음 샘플을 만들 때는 벽에서
못을 뽑아 반도체를 만드는 웃지못할 경험도 했습니다.

-못으로 어떻게 반도체를 만듭니까.

<>김회장=이해가 안가겠지만 이건 실화입니다. 당시 미국업체로 부터 처음
으로 샘플제작을 의뢰받았는데 작업중 반도체 칩을 들어 올리는 콜릿
(Die Collet)이라는 장비가 못쓰게 됐습니다.

이 장비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납기일은 코 앞에 닥쳤는데
큰 일이었지요.

이 때 우리 기술진중 한 사람(나정환씨.전아남정밀부회장)이 벽에서 못을
뽑아다가 납작하게 두들긴뒤 구멍을 뚫었습니다.

콜릿 대용품을 만든 것이지요. 못에 구멍을 뚫어 반도체를 옮기며 완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간신히 납기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샘플로 만든 제품도 정상적으로
작동했고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애써 만든 반도체가 몽땅 물에 잠겨 며칠밤 고생하신 적도
있으셨다면서요.

<>김회장=그렇습니다. 지난 72년 7월 서울에 큰 홍수가 났을 때였지요.
한강물이 넘쳐 화양동 공장 1층이 물에 잠겼어요.

물이 들어찬 곳에는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사에 공급키로 한 반도체
가 쌓여 있었지요.

마침 TI사 담당 부장이 서울에 와있었는데 이 광경을 목격하곤 "아남과의
거래는 이제 끝났다"고 하더군요.

큰일 났다 싶어 물에 젖은 반도체를 일단 2층으로 옮겼지요. 그리곤
어떻게든 해보자는 생각에서 불순물을 씻어내고 헤어 드라이어로
말렸습니다.

서울 시내를 뒤져 눈에 보이는 헤어드라이어는 모두 사다가 밤샘 작업을
했지요.

신통하게도 이 제품들이 모두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했어요. 우리들의
"지성"을 지켜본 TI사측에서 몹시 감격하고는 영국에 주어오던 물량까지
다 우리에게 몰아주더군요.

-아남은 반도체 조립부분에선 세계 1위기업이라고 합니다만 반도체
사업엔 여러가지가 있지요.

설계 웨이퍼가공 조립 테스트중 아남의 경우 설립초기부터 조립만을
고집해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회장=자동차가 수만가지의 부품을 조립해 완성되는 제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조립기술이 품질을 좌우하지요. 반도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계와 웨이퍼
가공을 잘한다 해도 조립기술이 없으면 좋은 제품이 되지 못합니다.

<<< 계 속 ...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