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파리에서 지낼 때다.

상제리제의 마로니에가 파랗게 피어나던 초봄의 어느 주말 아침
발코니에서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 보니 평소 차들이 두 줄로 꽉차던
작은 길이 내차 하나 남기고 텅 비어 있었다.

결국 나도 파리의 파란 봄유혹에 못이겨 가족과 함께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섰다.

아파트에서 잠시 가면 개선문 로터리를 돌아 상제리제로 가는데
이 지점의 운전이 몹시 까다로워 신경을 썼는데도 깜빡 신호를 위반하게
되었다.

다가온 경관에게 얼른 지도를 내보이며 오페라 하우스 가는 길을
물으니 선뜻 자기 호주머니의 지도책을 꺼내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는
관광 잘하라며 그낭 보내 주었다.

딱지를 먹지 않아 다행이라는 느낌보다 오히려 마음이 씁쓸했다.

선하고 구김 없는 파란 눈의 미남 경찰에게 왠지 미안했다.

생각을 오래 오래 가지고 있다.

한번은 L.A근무 때이다.

저녁 식사후 차를 갖고 동네 상가에 산보겸 나갔다 귀가하는 길에
뭔가 신셩 쓰이는 일이 있어 운전이 좀 거칠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호등 앞에 멈춰서 있는데 교통경찰 차가 경광등을 반짝이며 오더니
경찰관 한명이 내차로 다가왔다.

창문을 열자 그 경찰관은 차안을 들러보고는 "도로가 비에 젖어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운전하십시오"라며 돌아갔다.

아마도 음주운전 여부를 확인하려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차안에 집사람과
딸들이 있는 것을 보고 말을 바꿔이야기한 것 같이 짐작되었다.

집사람 그리고 딸들 앞에서 아빠를 검문하는 것이 교육이나 사회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지 아무튼 마음이 숙연해진다.

최근 우리는 세계화를 위하여 온 국민이 각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성공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의 세계화를 바라면서,문화의
여유에서 보여줄수 있는 파리와 L.A경찰관의 몸에 배인 성숙하고
참된 의식을 가끔 생각해 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