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고에 대한 종합대책이 나왔지만 "이제 됐구나"하고 안심이 되기는
커녕"글쎄"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워낙 대형사고대책에 이골이 난터여서어느사고보다 대응이 빨랐던
것은 평가할만하나 그 과정에서 불거졌었던 관료들의 면피주의정서를
곱씹어보면 과연 앞으로 대책의 일사분란하고 차질없는 집행과 유사
사고의 재발방지를 자신해도 좋을지 정녕 믿음이 가지않는다.

27일 아침 9시 대구사고가 텔레비전을 통해 보도됐을때 건설교통부
간부들의 얼굴은 "흙빛" 그 자체였다.

잇따른 대형사고에 망연자실하는 모습 뒤에는 내심 "이번엔 우리가
꼼짝없이 당하게됐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는 빛이 역력했다.

최근 성수대교사고 아현동가스폭발사고등 대형사건들이 잇따랐지만
용케도 건교부는 책임선상에서 벗어날수있었다.

그러나 대구사고의 제1보 대로라면 건교부는 면책여지가 없었다.

당시 보도는 지하철공사장에서 건설업체가 가스관을 잘못 건드려
사고가 난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관에서 발주한 공공 공사에서 건설업체가 낸 사고라면 공사장
안전관리제도에서부터 하도급문제 감리문제등등 어느 하나라도 건교부가
직간접적으로 걸리지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수대교 붕괴사고이후 공사안전관리를 시.도에 맡겨놓으면
안된다면서 건교부산하에 시설안전관리공단까지 설치한 터여서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실심노탄 하고있던 건교부에 오전11쯤"아현동사고의 재판인 것같다"는
제2보가 전해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일변했다.

기자실을 들락거리면서 "통산부로 "공"이 넘어갔다"식으로 몇번씩이나
강조해대는 직원도 있었다.

이제 통산부에 비상이 걸렸다.

차관이 급거 대구로내려가는등 법석을 떨었다.

이날 오후 사태는 또다시 반전됐다.

"지하철공사장이 아니라 인근 민간공사장에서 굴착을 하다가 가스관을
건드려 발생한 건설안전사고"로 가닥이 잡혀갔다.

통산부는 "가스안전사고가 아니라 건설재해"라면서 은근히 건교부를
겨냥했다.

그 전까지 "통산부책임"이라고 강변하면서 "강건너 불보듯"하던
건교부가 불난 초상집으로 변했다.

부랴부랴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지하철사고를 일제 중단하고
안전점검한후 재개"하는 방안을 놓고 내부적으로 논란이 빚어졌다는
후문이다.

논란의 배경에는"지하철사고도 아닌데 히 앞서 나갈 경우 책임만
커진다"는 면피주의 정서가 짙게깔려있었다.

미리 보도한 언론사에 "사실무근"해명자료를 보내려다 물러서는등 요란을
떨었다.

그랬던 건교부가 1일 뒤늦게 외청과 산하공사의 공사관계자들을 전부
불러들여 공사장위험이 드러날 경우 즉시 중지하고 안전대책을 완비
하라고 지시했다.

30일 일요일 재경원차관 주재로 열린 관계부처 종합대책회의에서도
면피주의정서는 베어있었다.

관계부처 실무자들은 "법적으로 따지자면 표준개발과 대백종합건설등
민간업체들 책임이다.

따라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대구시에서 책임지고 수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렇게하는 것이 지자제시대정신에도 적합하다는 명분까지 덧붙여졌다.

명분으로나 법적으로 면피구실은 그럴싸했다.

문민정부의 사정작업이후 한때 "복지부동"으로 흘렀던 과천은 최근들어
대형사고가 빈발하면서 "면피주의정서"라는 새로운 보신책을 찾는 것같아
씁스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