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근대사법 100주년 기념 '법원사'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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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은 이 땅에도 근대적 의미의 사법제도가 태동한지 1백년이 되는
날이다.
갑오개혁 다음해인 1895년 군국기무처가 제정한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후 꼬박 1세기가 흘렀다.
법원행정처는 이 날을 맞아 사법제도의 변천과 함께 전국을 떠들썩
하게 했던 1백10여건의 유명사건들을 시대별로 담은 "법원사"를
발간했다.
"법원사"는 이들 사건중 5공초에 일어난 이철희.장영자부부의 어음사건,
명성 김철호사건,영동개발 금융부정사건등 세 사건을 "경제사건의
빅3"로 꼽고 있다.
법원사는 이들 사건이 한결같이 정치적,경제적으로 불안했던 80년대
초반에 연쇄적으로 발생한 점을 들어 사법사상 최대의 경제사건기로
꼽고 있다.
경제사건으로서는 처음으로 피해규모가 1천억원대를 넘었던 이.장사건
에는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씨(당시 광업진흥공사사장)와 공덕종 전
상업은행장,임재수 전조흥은행장등 관련 피고인수만 해도 32명에 달해
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5공의 큰손 장씨는 중앙정보부장 출신인 남편 이씨와 함께 공영토건등의
기업체들로부터 받은 어음을 사채시장에 불법 유통시켜 결국 연쇄부도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공영토건은 현재도 법정관리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등 사건발생 13년이 지난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있다고
법원사는 전한다.
이.장씨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이.장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83년 8월 신흥 재벌로 급부상한
명성그룹 김철호회장 사건이 터져 세상을 또한번 뒤흔들었다.
김철호씨는 상업은행 혜화동지점 대리 김동겸씨와 공모,전주들에게
수기통장을 발행해 주고 예금 1천66억원을 가명비밀계좌로 빼내
명성신화를 창조해 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이 사건으로 윤자중 당시 교통부장관과 박창권 건설부도시계획국장등
고위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각종 인허가 업무의 편의를 봐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특히 이 사건 항소심에서는 김회장의 벌금 액수가 79억원으로 워낙
커 환형유치를 하면서 1천만원을 1일로 계산해 화제가 돼기도 했다.
이 두 사건으로 망신창이가 된 경제계는 명성사건 한달후에 일어난
영동개발사건으로 결정타를 맞는다.
영동개발 진흥주식회사와 신한주철(주)의 관계자들이 조흥은행 중앙지점
행원들과 결탁,회사 발행 어음에 은행직인을 불법날인해 지급보증한 다음
사채시장에서 이를 할인하는 방법으로 총 1천6백71원을 변칙적으로 빼내
쓴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주범인 이복례영동개발회장에게 징역15년,곽근배사장에게
징역 8년,이헌승조흥은행장에게 징역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빅3사건"은 5공 신군부의 집권으로 불안했던 시기에 경제정의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살려는
다수의 국민에게 커다란 허탈감과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법원사는
쓰고 있다.
법원사는 또 지난 61년 9월초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워커힐 호텔
건축부정사건"을 3공화국의 대표적인 경제사건으로 꼽고 있다.
워커힐 호텔 공사는 당시 국내 경제 여건상 외자 2백60만달러,내자
3억6천4백만원을 투입할 만큼 긴급한 사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행돼 항간의 의혹을 사왔다.
결국 검찰의 수사 결과 중앙정보부 소속 워커힐 이사장 임병주,경리과장
유재명,시공사인 삼환기업 전무 이창호,건설 자문역 정해직씨등이
<>공사자금 유용 <>민주공화당에 1백54만여원 상당의 외제고급설비자재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형사지법 조언판사는 63년 6월 17일 임씨에게 징역 1년,정씨에게
징역 8월등을 선고했으나 같은해 12월 공포된 일반사면령에 따라 이들은
모두 면소판결을 받아 흐지부지 종결되고 말았다.
지난 66년 9월 재무부가 발표한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사건"도
빼놓을 수 없는 대형 경제사건으로 법원사는 기록하고 있다.
또 70년대 중반 이른바 "무서운 아이들"로 불리었던 "제세산업"의
이창우,"율산그룹"의 신선호씨등은 거액의 부도로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 <>사직공원용지 부정불하사건(63년) <>박영복 부정대출사건
(74년) <>정보사땅 사기사건(92년)등도 법원사를 장식하고 있다.
<윤성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5일자).
날이다.
갑오개혁 다음해인 1895년 군국기무처가 제정한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후 꼬박 1세기가 흘렀다.
법원행정처는 이 날을 맞아 사법제도의 변천과 함께 전국을 떠들썩
하게 했던 1백10여건의 유명사건들을 시대별로 담은 "법원사"를
발간했다.
"법원사"는 이들 사건중 5공초에 일어난 이철희.장영자부부의 어음사건,
명성 김철호사건,영동개발 금융부정사건등 세 사건을 "경제사건의
빅3"로 꼽고 있다.
법원사는 이들 사건이 한결같이 정치적,경제적으로 불안했던 80년대
초반에 연쇄적으로 발생한 점을 들어 사법사상 최대의 경제사건기로
꼽고 있다.
경제사건으로서는 처음으로 피해규모가 1천억원대를 넘었던 이.장사건
에는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씨(당시 광업진흥공사사장)와 공덕종 전
상업은행장,임재수 전조흥은행장등 관련 피고인수만 해도 32명에 달해
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5공의 큰손 장씨는 중앙정보부장 출신인 남편 이씨와 함께 공영토건등의
기업체들로부터 받은 어음을 사채시장에 불법 유통시켜 결국 연쇄부도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공영토건은 현재도 법정관리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등 사건발생 13년이 지난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있다고
법원사는 전한다.
이.장씨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이.장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83년 8월 신흥 재벌로 급부상한
명성그룹 김철호회장 사건이 터져 세상을 또한번 뒤흔들었다.
김철호씨는 상업은행 혜화동지점 대리 김동겸씨와 공모,전주들에게
수기통장을 발행해 주고 예금 1천66억원을 가명비밀계좌로 빼내
명성신화를 창조해 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이 사건으로 윤자중 당시 교통부장관과 박창권 건설부도시계획국장등
고위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각종 인허가 업무의 편의를 봐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특히 이 사건 항소심에서는 김회장의 벌금 액수가 79억원으로 워낙
커 환형유치를 하면서 1천만원을 1일로 계산해 화제가 돼기도 했다.
이 두 사건으로 망신창이가 된 경제계는 명성사건 한달후에 일어난
영동개발사건으로 결정타를 맞는다.
영동개발 진흥주식회사와 신한주철(주)의 관계자들이 조흥은행 중앙지점
행원들과 결탁,회사 발행 어음에 은행직인을 불법날인해 지급보증한 다음
사채시장에서 이를 할인하는 방법으로 총 1천6백71원을 변칙적으로 빼내
쓴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주범인 이복례영동개발회장에게 징역15년,곽근배사장에게
징역 8년,이헌승조흥은행장에게 징역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빅3사건"은 5공 신군부의 집권으로 불안했던 시기에 경제정의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살려는
다수의 국민에게 커다란 허탈감과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법원사는
쓰고 있다.
법원사는 또 지난 61년 9월초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워커힐 호텔
건축부정사건"을 3공화국의 대표적인 경제사건으로 꼽고 있다.
워커힐 호텔 공사는 당시 국내 경제 여건상 외자 2백60만달러,내자
3억6천4백만원을 투입할 만큼 긴급한 사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행돼 항간의 의혹을 사왔다.
결국 검찰의 수사 결과 중앙정보부 소속 워커힐 이사장 임병주,경리과장
유재명,시공사인 삼환기업 전무 이창호,건설 자문역 정해직씨등이
<>공사자금 유용 <>민주공화당에 1백54만여원 상당의 외제고급설비자재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형사지법 조언판사는 63년 6월 17일 임씨에게 징역 1년,정씨에게
징역 8월등을 선고했으나 같은해 12월 공포된 일반사면령에 따라 이들은
모두 면소판결을 받아 흐지부지 종결되고 말았다.
지난 66년 9월 재무부가 발표한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사건"도
빼놓을 수 없는 대형 경제사건으로 법원사는 기록하고 있다.
또 70년대 중반 이른바 "무서운 아이들"로 불리었던 "제세산업"의
이창우,"율산그룹"의 신선호씨등은 거액의 부도로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 <>사직공원용지 부정불하사건(63년) <>박영복 부정대출사건
(74년) <>정보사땅 사기사건(92년)등도 법원사를 장식하고 있다.
<윤성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5일자).